[Q매거진]살짝 돌아서면 바로 그곳 도쿄의 속살, 소소한 기쁨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3일 03시 00분


일본 도쿄 여행, 한적한 명소들

“도쿄 같지 않은 도쿄!” 마치 교토의 한 연못을 떠올리게 하는 이공간은 도쿄 ‘기요스미 정원’이다. 도쿄인들은 물론이고 도쿄 여행에 지친 관광객들이 들러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도쿄 같지 않은 도쿄!” 마치 교토의 한 연못을 떠올리게 하는 이공간은 도쿄 ‘기요스미 정원’이다. 도쿄인들은 물론이고 도쿄 여행에 지친 관광객들이 들러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일본 도쿄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의외의 발견’이 아닐까 싶다. 3000만 명이 몰려 있는 도쿄는 어딜 가도 복잡하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다. 하지만 북적이는 공간을 ‘살짝’ 지나면 아기자기한 카페나 옷가게가 나온다. 대여섯 개의 노선이 만나는 지하철역을 조금만 지나면 동네 구석구석을 달리는 느릿한 전차도 볼 수 있다. 골목길을 지나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헌 책방도 만날 수 있다. 모두 우연한 만남이어서 반갑기 그지없다.

‘복잡한 도쿄’가 도쿄의 전부는 아니다. 이런 만남은 신주쿠(新宿)나 시부야(澁谷), 하라주쿠(原宿) 같은 유명 관광지에서는 경험할 수 없다. 한적한 곳에서 산책하고 싶고, 일상의 풍경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도쿄의 한적한 장소 몇 곳을 소개한다. 소개 순서는 도쿄의 동쪽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가는 방식이다.
정원 옆 커피 가게, 기요스미

일본 도쿄 도 고토 구에 위치한 기요스미(淸澄)는 도쿄의 동쪽 동네다. 지하철 아사쿠사센과 한조몬센이 만나는 기요스미시라가와(淸澄白河) 역을 중심으로 한 마을이다. 주택가여서 도쿄 여행 초보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옛 정취는 물론이고 최근의 유행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젊은 관광객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동네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들어선 미국 커피 전문점 브랜드 ‘블루보틀’ 1호점.
최근 들어선 미국 커피 전문점 브랜드 ‘블루보틀’ 1호점.

지하철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면 5분 거리에 있는 ‘기요스미 정원’부터 눈에 띈다. 도쿄 도가 지정한 명승 중 하나이기도 한 이곳은 에도 시대 한 거상의 저택이었다. 지금은 큰 연못을 중심으로 각종 나무가 뻗어 있는 대규모 정원이 돼 연인, 노부부, 영업사원들의 조용한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 없다 보니 물가에는 각종 새들이 찾아와 쉬기도 한다. 다만 문 닫는 시간(오후 5시) 전에 방문을 해야 한다. 운치 있는 밤 풍경을 볼 수 없는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고요한 정원을 나서 동남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트렌디’한 장소가 기다리고 있다. 올해 2월 생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의 도쿄 1호점이다. 블루보틀은 손으로 직접 내려 만드는 스페셜티 커피(고급 커피)로 유명한 미국 커피 전문점 브랜드다. 해외 점포는 도쿄, 그중 기요스미가 1호점이다. 점포가 주택가 안에 있을뿐더러 흰 건물에 파란색 병 모양(블루보틀의 상징물)만 그려져 있어 찾기 어렵지만 특유의 ‘신맛’이 나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매일 상점 앞은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조용한 주택가와 미국 커피 전문점의 만남, 다소 ‘이색적’인 풍경에 사람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기요스미시라가와 역 동쪽에 있는 ‘도쿄도 현대미술관
기요스미시라가와 역 동쪽에 있는 ‘도쿄도 현대미술관


블루보틀의 동쪽에는 전시 공간인 ‘도쿄도 현대미술관’이 있다. 미술관 관람객 중에는 전시를 보고 난 후 바로 옆에 있는 ‘기바(木場)’ 공원에서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전시회의 여운을 달래기 위해서다. 문화 동네, 그것도 ‘조용한’ 문화 동네라서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가는 법=한조몬센·아사쿠사센 기요스미시라가와역

▼좁은길 오가는 노면전차, 동심을 파는 작은 동네… 아! 별미다▼

도쿄 하마마쓰초 역 세계무역센터빌딩 40층에 있는 전망대 ‘시사이트 톱’에서 바라 본 도쿄 타워. 이 곳은 단체 관광객보다 1∼2인 단위의 개인 관람객 위주로 찾아와 조용히 야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도쿄 하마마쓰초 역 세계무역센터빌딩 40층에 있는 전망대 ‘시사이트 톱’에서 바라 본 도쿄 타워. 이 곳은 단체 관광객보다 1∼2인 단위의 개인 관람객 위주로 찾아와 조용히 야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도쿄타워 대신 ‘시사이드 톱’

유명 관광지에 있는 전망대는 늘 붐빈다. 처음 방문해 한눈에 도시를 내려다보고 싶은 관광객, 풍경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가, 낭만적인 풍경을 즐기려는 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쿄를 대표하는 전망대는 도쿄 중심부에 위치한 도쿄타워와 동북쪽 오시아게(押上) 역에 있는 도쿄스카이트리를 꼽을 수 있다. 두 곳 모두 도쿄의 필수 관광지로 여겨지다 보니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단체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주말 저녁에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도쿄의 야경을 천천히 ‘음미’하기란 쉽지 않은 편이다.

그런 이들이 모이는 곳이 있다. 도쿄타워나 도쿄스카이트리의 대안 장소로 꼽히는 ‘시사이드 톱’은 도쿄 동남쪽 미나토(港) 구에 위치한 하마마쓰초(濱松町) 역 세계무역센터빌딩 40층에 있다. 도쿄타워나 도쿄스카이트리처럼 타워 모양이 아닌 일반 빌딩 안에 있다 보니 눈에 띄지는 않는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잔잔한 보사노바 음악이 흘러나오고 도쿄의 전망이 눈앞에 펼쳐진다. 단체 관광객보다는 연인이나 직장인, 사진가 등 1∼2인 단위의 개인 관람객 위주라는 점이 조용한 분위기를 만드는 요인이다. 특히 도쿄타워나 도쿄스카이트리의 입장료가 2000엔대 중반인 반면 시사이드 톱의 입장료는 760엔(약 7070원)으로 가격이 싸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무료 전망대 중에는 신주쿠의 도쿄도청 전망대나 도쿄 서쪽 세타가야(世田谷) 구 산겐자야(三軒茶屋) 역에 위치한 ‘캐롯타워’ 전망대 등이 있다.

※가는 법=①시사이드 톱: JR 하마마쓰초 역, 아사쿠사센·오에도센 다이몬 역에서 바로 ②신주쿠 도쿄도청: JR 신주쿠 역 서쪽 출구로 나와 도보 10분 ③캐롯타워: 큐덴엔토시센·도큐세타가야센 산겐자야 역에서 바로.

한적한 동네를 달리는 ‘노면 전차’

일본은 ‘전차의 나라’로 불릴 정도로 어느 곳을 가든 열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 도쿄는 통근을 위한 지하철부터 동서남북을 잇는 국철 등 수십 개의 열차 노선이 얽혀 있다. 대부분 빠른 시간 내에 목적지에 도착하려는 열차들이고 출퇴근 시간 사람들로 꽉 찬 ‘만원 열차’가 대부분이다 보니 열차에서 낭만을 찾는다는 것은 다소 한가한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이런 가운데 노면 전차는 대안 수단으로 여겨진다. 노면 전차는 도로 가장자리에 박혀 있는 선로 위를 달리는 교통수단이다. 속도로는 버스나 지하철에 이미 뒤처진 상태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동네 주민들을 중심으로 수요가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 도쿄에는 와세다대 인근에서 도쿄 북동쪽 다이토(台東) 구 미노와바시(三ノ輪橋)를 운행하는 ‘아라카와(荒川)’와 도쿄 서쪽 세타가야 구(산겐자야∼시모다카이도)를 다니는 ‘세타가야’ 등 2개의 노면 전차 노선이 있다.

노면 전차는 버스와 전철의 중간쯤 된다. 노면 전차는 버스처럼 열차 안에서 차비를 내야 하고 앞문으로 타 뒷문으로 내려야 하지만 전철처럼 선로를 벗어날 수 없다. 상행과 하행으로 이루어진 노선은 좁은 동네 골목으로 들어갈 때는 단선이 되기도 한다. 동네 가게에서 산 채소를 들고 차에 오르는 주부, 도우미견의 안내를 받으며 자리에 앉는 시각장애인 등 전차 속 풍경은 도심을 달리는 일반 열차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 여유로움이 신기해 ‘찰칵’거리며 바쁘게 셔터를 누르는 관광객들도 종종 눈에 띈다.

※가는 법=①아라카와 노선: 도자이센 와세다(早稻田) 역에서 북쪽으로 도보로 10분 ②세타가야 노선: 도큐덴엔토시센 산겐자야 역 혹은 게이오센 시모다카이도(下高井戶) 역에서 바로 연결.

도쿄 속 복고 거리, 오우메 역

화려한 쇼핑몰과 백화점, 요즘 유행하는 디저트 가게, 유명 커피 체인… 도쿄에서는 흔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런 풍경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동네도 있다.

오우메(靑梅)는 도쿄 신주쿠의 북서쪽에 있는 곳으로 열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동네다. 신주쿠와 같이 ‘도쿄 도’ 안에 있는 동네지만 분위기는 신주쿠와 ‘천지 차이’다. 이곳을 관통하는 주제는 이른바 ‘복고’다. 2015년 현재에도 1960∼1970년대 일본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도쿄의 복잡함에 싫증 난 사람들이 치유 받기 위해 즐겨 찾는 장소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오우메 역에 가는 과정부터 특별하다. 이 역을 지나는 열차는 다른 곳과 달리 내리고 탈 때 문을 수동으로 열 수 있도록 했다. 승객이 다른 노선에 비해 많지 않아 필요할 때만 열고 닫게 했다. 역에 도착하면 나무판자로 만든 대합실,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 1960, 70년대 인기를 얻었던 영화 포스터들이 화석처럼 굳어 있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역 앞에 들어선 작은 가게들은 옛날 일본 글씨체로 가게 간판을 만들었고 당시 인기 배우 사진을 걸어 놓는 등 쇼와(昭和) 시대를 재현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이런 풍경이 정겹다며 목에 사진기를 걸고 동네를 탐방하는 일본인들과 관광객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역에서 걸어 나오면 3가지 작은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고양이를 주제로 옛 일본 거리를 재현한 쇼와 박물관과 그 시절 인기를 얻었던 만화가 아카즈카 후지오(赤塚不二夫) 박물관, 당시 유행했던 상품이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레트로 상품 박물관’ 등이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3곳을 모두 돌아보는 데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래도 기억은 꽤 오래 남는다.

※가는 법=JR오우메선 오우메 역에서 바로.

쇼핑이냐 독서냐… 후타코타마가와 쇼핑몰

시부야에서 요코하마(橫賓) 시로 이어지는 지하철 노선인 도큐덴엔토시센에는 최근가 볼 만한 쇼핑몰이나 아웃렛 등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쇼핑 라인’으로 각광 받고 있다. 그중 후타코타마가와(二子玉川) 역은 쇼핑을 하면서 조용히 독서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주목 받고 있다.

역과 바로 연결되는 생활용품 및 식품 전문 쇼핑몰 ‘라이즈 도그 우드 플라자’, 맞은편 ‘다카시마야 백화점’ 등 대형 쇼핑타운이 형성돼 있다. 이를 중심으로 이탈리안 레스토랑, 남성 의류 편집 매장 등 오감을 즐겁게 하는 감각적인 가게들이 이어져 있다.

특히 이곳이 주목 받는 이유는 5월에 들어선 ‘쓰타야’ 매장 덕분이다. 쓰타야는 일본의 유명한 소프트웨어 대여 전문점으로 주로 각 지역 동네 인근에 매장을 냈다. 최근에는 신상품 위주로 상품을 판매하거나 규모를 크게 하는 등 ‘프리미엄 매장’이 들어서고 있다. 5월에 들어선 쓰타야 후타코타마가와 점은 책, 음반 등과 함께 전자 제품까지 판매하고 있다. 특히 스타벅스 매장과 협업을 통해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을 1, 2층 통틀어 500석 가까이 만들었다. 책을 꼭 사지 않아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해 ‘독서광’들에게 명소로 꼽히고 있다.

※가는 법=도큐덴엔토시센 후타코타마가와 역에서 바로.

동심을 만나다… 노보리토

일본 문화 특히 만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어릴 적 좋아하던 만화 주인공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노보리토(登戶)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만화 동네’, 구체적으로 ‘도라에몽’의 동네로 불린다.

노보리토는 도쿄의 서남부에 위치한 가나가와(神奈川) 현 가와사키(川崎) 시에 위치한 곳으로 도쿄와 가나가와 현의 경계선에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이곳에 4년 전인 2011년 일본의 인기 만화 ‘도라에몽’을 그린 작가 후지코 F. 후지오의 박물관이 세워졌다. 작가가 집필 활동을 하면서 살았던 곳이 가와사키라는 인연 때문이다. 1969년 어린이 잡지에 처음 등장한 도라에몽은 작가의 대표작품이자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도 사랑 받는 캐릭터 중 하나로 꼽힌다. 한 초등학생(노진구)의 운명을 바꾸고 그를 도와주기 위해 22세기에서 온 고양이 로봇이다. 배 주머니에서 온갖 도구를 꺼내 진구를 돕는 과정은 코믹하면서 때로는 감동적이기도 하다.

후지코 F. 후지오의 박물관이 생기면서 노보리토는 도쿄 서쪽 동네인 미타카(三鷹)와 함께 ‘만화 동네’로 떠올랐다. 미타카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만화 캐릭터들을 모아 놓은 ‘지브리 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다소 복잡해진 미타카와 달리 노보리토는 아직까지 한적한 편이다.

박물관은 노보리토 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 가와사키 시에서 운영하는 박물관 셔틀 버스를 타면 5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물론 산책하는 기분으로 동네를 둘러보며 박물관에 도착해도 좋다. 박물관은 작가의 생애와 도라에몽으로 대표되는 작품세계 등을 볼 수 있도록 했다. 홀로그램으로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은 만화 팬이나 ‘키덜트(어릴 적 취향을 간직한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장치다. 특히 관람객 대상으로 상영되는 단편 영화가 끝난 후 영화관 스크린이 좌우로 열리며 바깥 정원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한 장치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왠지 정원에서 도라에몽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세상에 지친 우리들을 위해 배 주머니에서 도구 하나쯤 꺼내놓고 있을 것 같은 느낌. 신주쿠 시부야에서 느낄 수 없는, ‘의외’의 감성에 괜히 뭉클해진다.

※가는 법=JR난부센·오다큐센 노보리토역: 후지코 F. 후지오 박물관까지 도보로 10분, 버스로 5분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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