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에 씻긴 이슬을 이슬 머금은 배추가 진주(眞珠)처럼 아롱지며 트이는 아침을 푸른 바다 어리는 비둘기의 눈동자를 태양(太陽)이 웃으며 내려오는 하늘… 그 눈부신 계단에 핀 진달래를 또 신문(新聞)이 음악(音樂)처럼 뿌려지는 거리를 생각하는 것은.
여기 무수히 검은 총(銃)알 자국 얼룩진 나무와 나무 사이 눈이 깔린 밤 … 여기에서.
오 두 마리 버들강아지 꼼지락이는 은(銀) 목걸이를 생각하며, 꽃바구니의 꽃 그리고 사과이고 싶은 것은… 당신의 가슴께에서.
구름도 지구(地球)도 인간(人間)도 생활(生活)도 어느 것 하나 빠트리지 않고 다 함께 그리운 내가 전쟁(戰爭)의 숯검정이 자욱이 얼어붙은 내 눈시울 속에 서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 겨울날 아지랑이처럼 아스라이 서 있는 까닭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의 소용돌이인데 겨울이 오고, 탄흔 무수한 ‘나무와 나무 사이/눈이 깔린 밤’, 깨어 있는 한 병사가 있다. 방한복이나 제대로 입었을까. 어쩌면 닳아진 군복과 군화, 배도 고플 테다. 떠나지 않는 공포와 고통이 병사에게 ‘아름다운/어느 한 아름다운 날을’ 절절히 떠오르게 한다. ‘꽃바구니’ 같았던 사랑의 시간, 아 너무도 그리운, 눈에 삼삼한 ‘당신의 가슴께’ ‘꽃과 사과’! 달콤한 안식과 평화의 그런 날이 다시 올까. ‘푸른 바다 어리는 비둘기의 눈동자’ 같은 그날이. 소중한지 모르고 흘려보내던 일상이 ‘어느 것 하나 빠트리지 않고/다 함께 그리운’ 병사다. ‘구름도/지구도/인간도/생활도’! 신문도 참 오래 못 보았구나. 신문 파는 소년들이 손님을 부르는 외침으로 들썩거리던 거리, 시내 한복판의 소요며 분답도 평화의 그것인 양 어찌나 가슴 저리게 그리운지 ‘신문이 음악처럼 뿌려’진단다. ‘전쟁의 숯검정이 자욱이 얼어붙은’ 병사의 눈시울에 이 모든 것이 꿈인 듯 ‘아스라이’ 들어선다.
시 속의 병사는 시인 자신일 테다. 시인은 살아남아 시를 쓰는데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수많은 병사, 전쟁이 끝난 뒤에도 욱신거리는 이 상흔이 전봉건의 많은 시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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