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역사나 그렇지만 음악의 역사에서도 걸출한 영웅들이 짧은 시기에 나타나 ‘군웅할거’한 시기가 있습니다. 펠릭스 멘델스존(1809년생), 로베르트 슈만과 프레데리크 쇼팽(1810년생), 리스트 페렌츠(1811년생)도 19세기 중반이라는 짧은 시대에 중부 유럽을 뜨겁게 달군 주인공들이었습니다. 이 중 리스트 외에는 오래 살며 길게 명작을 남기지 못했다는 점이 애석합니다.
슈만과 쇼팽, 리스트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연주에 인생을 걸고 분투했습니다. 오늘날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 리스트는 ‘피아노의 귀신’이라는 별명을 남기고 있습니다. 슈만은 너무 연습을 열심히 한 탓에 일찍이 손가락에 부상을 입고 연주가의 길을 포기했지만 피아노 스승의 딸인 클라라 비크와 결혼했습니다. 클라라는 쇼팽이나 리스트 못잖게 당대 유럽의 감탄을 자아낸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리스트는 특히 다른 사람의 가곡이나 오페라 아리아 등 작품을 화려한 기교가 동반되는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해 연주하기를 즐겼습니다. 슈만, 쇼팽, 클라라 슈만의 곡도 모두 편곡해 자신의 레퍼토리에 집어넣었습니다.
1840년, 서른 살의 슈만과 스물아홉 살의 리스트가 라이프치히에서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이미 편지와 악보를 보내며 우정을 쌓던 사이였습니다. 리스트의 연주를 관람한 슈만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대담하고 힘 있는 연주를 하다가 다음 순간 한없이 부드럽고 가벼운 연주를 펼친다. 그의 연주를 듣는 순간 이 세계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고 썼습니다. 리스트도 평생 슈만 음악의 팬임을 자처했고 ‘헌정(Widmung)’을 비롯한 슈만의 가곡들을 연주회용 독주곡으로 편곡해 유럽 각지에서 연주했습니다.
내일(7월 29일)은 1856년 로베르트 슈만이 젊은 나이에 정신병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하직한 지 159년 되는 날입니다. 이틀 더 지나 31일은 리스트가 세상을 떠나고 129년 되는 날이죠. 만약 저세상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면, 30년 하고도 이틀이나 먼저 와있던 슈만은 리스트에게 어떤 말을 건넸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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