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오래 살고, 후임자를 비판하지 말고, 정쟁이 아닌 국익과 보편적 가치에 집중하라.’
미국 대통령학 전문가인 저스틴 본 보이시주립대 교수는 5월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위대한 전직 대통령(Ex-President) 되는 방법’이란 글에서 그 조건을 이렇게 요약했다. 본 교수는 1981년 퇴임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91·제39대)을 최고의 전직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카터 전 대통령은 무주택 서민이나 빈민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해비탯 운동’을 꾸준히 벌여왔고 ‘카터재단’을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 세계적 보건 증진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 공로로 2002년에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현직에선 실패하고, 퇴임해선 성공한 대표적 ‘반전(反轉) 대통령’으로 흔히 거론된다. 그 스스로 공개 강연을 할 때 종종 “많은 청소년이 장래 희망으로 ‘카터 같은 전직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라고 한다면서요”라는 농담으로 시작한다.
90세가 넘었지만 그의 ‘미친 존재감’은 현재 진행형이다. 1월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옆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린 기생충 질병 박멸 캠페인 ‘카운트다운 투 제로(Countdown to Zero)’ 행사장에서 정정한 모습의 그를 봤다. 그는 “카터재단은 1986년부터 이 운동을 전개해 왔는데 앞으로 자연사박물관과 함께 하기로 했다. 지구상에 기니아충이 남아 있는 나라는 아프리카의 남수단, 에티오피아, 차드, 말리뿐인데 이를 박멸하려면 4개국 공조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신간 ‘가득 찬 인생-아흔 살의 회상(A Full Life-Reflections at Ninety·사진)’이 출간된 이달 7일엔 TV와 라디오 등에 하루 종일 그가 등장했다. 이날 오전 뉴욕지역의 대표적 라디오채널 ‘WNYC’와의 전화 인터뷰에서는 “당신은 가장 성공한 전직 대통령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퇴임 후 뭘 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만큼 아프리카 같은 소외되고 못사는 지역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그는 맨해튼 5번 애버뉴의 한 대형서점에서 ‘저자 사인회’를 가졌다. 사인회 시작 전에 현장에 가보니 200∼300명이 그의 신간을 사들고 이미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오후엔 몇몇 TV에도 출연해 신간 소개와 함께 동성결혼 합법화 등 주요 이슈에 대한 소신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그는 이날을 시작으로 총 26일간 미국 15개 주요 대도시를 도는 ‘신간 홍보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의 저서는 이미 20권이 넘는다. 그래서 이번 신간에 ‘엄청난 뉴스’가 들어있지는 않다. 하지만 주요 이슈별로 작은 소제목을 친절하게 달아놓아서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 읽기 쉽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그는 1979년 6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을 ‘동맹국 정상과의 회담 중 가장 불쾌했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최악의 (정상회담) 분위기를 다소 밝게 해준 사람은 당시 영부인 역할을 하며 배석한 박근혜(대통령)였다”고 덧붙였다.
현직 정치지도자에게 의미 있는 시사점을 주는 대목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그는 “내가 현직에 있을 땐 미일 간 경제 갈등이 심했다. 그래서 양국을 잘 아는 미일 인사 각 3명씩, 총 6명의 ‘현인(賢人·wise men) 모임’을 만들어 그들의 조언을 경청했고 (그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요즘 미중 갈등에서도 이를 참고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