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인이 1927년 발표한 시 ‘향수’의 한 구절이다. 이동원과 박인수가 노래로 불러 널리 알려졌다. ‘지줄대다’ ‘질화로’ 같은 향토색 짙은 시어는 언제 들어도 정겹다.
노랫말이나 시, TV 드라마 등에서 사용하는 낱말 하나하나는 언중의 언어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88년 한글맞춤법이 발표되기 60여 년 전에 쓴 ‘향수’의 ‘얼룩백이’ 황소도 그중 하나다. 표준어는 ‘얼룩빼기’지만 아직도 많은 이가 ‘얼룩백이’라고 한다. ‘향수’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우리 말법으로 보면 얼룩백이는 논쟁거리조차 안 된다. ‘-배기’ ‘-빼기’ ‘-박이’는 접미사이지만 ‘-백이’는 다른 데 쓰인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배기’와 ‘-빼기’의 쓰임새를 놓고도 많은 이들이 헷갈려 한다. 쉽게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된다. ‘배기’로 소리 나면 배기로(공짜배기 진짜배기 나이배기 육자배기 등), 빼기로 소리 나면 빼기로 적는다(곱빼기 억척빼기 얼룩빼기 등).
다만 이것만은 기억해두자. 한 형태소(形態素) 안에서 ‘ㄱ’과 ‘ㅂ’ 받침 뒤에서는 ‘빼기’로 발음되더라도 ‘배기’로 적는다는 사실 말이다. 형태소는 ‘뜻을 가진 가장 작은 말의 단위’다. 설렁탕 ‘뚝배기’를 예로 들어보자. 뚝배기는 ‘뚝’과 ‘배기’로 나눠지지 않는다. 즉, 한 형태소로 된 말이다. 그래서 ‘뚝빼기’로 소리 나더라도 ‘뚝배기’로 적어야 옳다. 여기서 의문 한 가지. 곱빼기 억척빼기 얼룩빼기 역시 ‘ㄱ’과 ‘ㅂ’ 받침 뒤에서 사용되는데 왜 뚝배기처럼 곱배기 억척배기 얼룩배기로 적지 않는 걸까. 곱빼기는 곱+빼기, 억척빼기는 억척+빼기, 얼룩빼기는 얼룩+빼기로 나누어진다. 즉, 한 형태소의 낱말이 아니므로 소리 나는 대로 적어야 한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도 재미있다. 이 역의 이름이 우리 말법을 거스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해 접미사 ‘-박이’의 쓰임을 거스르고 있다. ‘-박이’가 뭔가. 무엇이 박혀 있는 사람이나 짐승 또는 물건을 뜻한다. 얼굴에 큰 점이 있는 사람은 ‘점박이’, 금니를 한 사람은 ‘금니박이’, 소의 양지머리뼈의 한복판에 붙은 기름진 고기는 ‘차돌박이’라 한다. 이쯤 되면 눈치 챘을 것이다. ‘장승이 박혀 있는 곳’은 ‘장승박이’라고 해야 함을. 그런데 ‘장승배기역’이란다. 그래도 고치지 않는 것은 장승배기는 이미 지명으로 정착한 낱말로 보기 때문이다. 그 자체를 고유명사로 보는 것이다.
현실 언어와 맞춤법은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 결과 맞춤법도 세월 따라 바뀌곤 한다. 그렇다고 쉽사리 현실 언어의 손을 들어줄 순 없다. 현실 언어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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