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은 저딴 헤어스타일에 김구 안경 끼고도 존예보스인 전지현이 상알파 모에캐로 2시간 20분 동안 원톱으로 나오는 영화. 메이크업 뷰러조차 안하고 메베만 했는데 왜 때문에 우주급 미녀인지 모르겠는….”
@saeh**이 올린 이 글은 2500여 회나 퍼졌다. 지난 1주일 동안 ‘암살’을 키워드로 한 트윗 가운데 가장 많은 리트윗을 기록한 것이다. ‘외계어’에 가까운 이 글을 단박에 다 이해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따라가 보자.
‘존예보스’는 정말 예쁜 대장이란 뜻이다. ‘상알파’는 위 상(上)자에 알파를 합성한 것으로 최고 중의 최고라는 뜻이다. ‘모에캐’는 일본어와 영어의 합성어다. ‘모에’는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했다는 뜻이고 ‘캐’는 캐릭터의 준말이다. 매력적인 캐릭터로 풀이할 수 있다. ‘뷰러’는 속눈썹을 말아 올리는 데 쓰는 기구다. ‘메베’는 메이크업 베이스, 즉 기초화장만 했다는 뜻이다. 140자 제한의 트위터 언어가 얼마나 많은 축약과 다국적 합성어로 진화(?)해 가는지 보여주는 글이다.
‘암살’의 흥행 돌풍이 이어지고 있다. 개봉 1주일 만에 관객 400만 명을 돌파했다. ‘타짜’ ‘도둑들’ 등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의 상업적 컨벤션이 잘 표현된 영화인 데다 전지현을 비롯해 이정재, 하정우, 오달수, 조진웅 등 스타들이 총출동했고 광복 70주년을 앞둔 시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다. 1000만 관객 돌파도 떼놓은 당상처럼 보인다. 한편에서는 스크린 독과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닉네임 강씨네수다가 올린 “이런 기록은 이제 좀…;; 개봉일 기준 각 영화 스크린 확보 숫자. 암살-1264개 / 도둑들-890개 / 괴물-513개. 시간이 갈수록 ‘최단 기간’ 어쩌구 하는 기록은 무의미할 겁니다”라는 내용의 트윗은 100회 넘게 리트윗됐다.
개봉일인 7월 22일부터 29일까지 8일 동안 트위터, 블로그 등에서 ‘암살’을 언급한 문서는 모두 4만7323건이 검색됐다. 개봉일인 22일에 4087건이었는데 27일엔 9703건으로 두 배가량으로 늘어났다. 뒤로 가면서 언급량이 늘어나는 것은 영화 이야기뿐 아니라 친일파와 관련된 메타 텍스트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같은 기간 ‘영화’를 언급한 29만3681건의 글에 나타난 작품 연관어의 압도적인 1위도 ‘암살’이었다. 영화 흥행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다. ‘암살’은 2위 ‘인사이드 아웃’의 두 배 가까이 언급됐다. 3위부터 5위까지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가 차지했다.
평가도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네이버 관객 평점 9.1(10점 만점)이 말해주듯, ‘암살’과 함께 언급된 긍·부정 언어 분포를 보면 긍정어 분포가 61%로 부정어 분포 19%를 압도했다. 재밌다, 좋다, 아름다움, 기대, 멋있다 등의 언어가 상위권에 분포됐다.
‘암살’과 함께 언급된 전체 연관어 1위는 역시 전지현(1만264건)이었다. 좀 과장해 말하면 영화 ‘암살’은 전지현을 위한, 전지현에 의한, 전지현의 영화였다. @kcan***은 “암살은 어떤 영화인가. 전지현이 똥그란 안경을 쓰고 나와서 총 쏘는 영화인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또 @difx*****은 “‘한두 명 죽인다고 세상이 바뀌냐’는 이정재의 비아냥거림에 ‘그래도 끝까지 싸운다는 걸 보여줘야 하니까’라는 전지현의 서늘한 대꾸가 내가 생각하는 영화 ‘암살’의 키워드”라는 글도 큰 호응을 얻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도 “영화 암살. 안옥윤(전지현)의 눈빛이 아직도 애잔하게 남네요”라며 안옥윤 캐릭터에 진한 애정을 드러냈다. 5위, 6위, 8위, 10위에 오른 캐릭터, 안경, 스타일, 원톱 등도 전지현과 강한 연관성을 갖고 언급된 키워드들이다.
2, 3위는 역시 하정우(8007건)와 이정재(5963건)가 차지했다. 하와이 피스톨 하정우의 존재와 잔혹한 밀정 이정재가 영화의 극적 요소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고 볼 수 있다. @salg**은 “암살 후기: 하정우가 이정재보고 창녀라고 한다”라는 짧은 트윗으로 1600회 가까운 호응을 얻었다.
4위는 이 영화를 맵시 있게 빚어낸 최동훈 감독이 차지했다. 최동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재밌는 사실은 곧 광복 70주년이라는 거다. 나도 몰랐다. 흐름이란 게 있고 인연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는 막판에 이정재가 연기한 친일파 염석진에 대한 반민특위 재판을 다룬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에 대한 감독의 정공법이다. 9위에 친일파가 오른 이유.
영화 ‘암살’은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는 느낌을 준다. 내러티브의 완결성보다 스케일에 집중한 탓이기도 하고 민감한 역사적 주제의 무게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영화 ‘암살’은 광복 70주년을 앞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은 트윗으로 이 사실을 환기했다.
“일제하 오욕의 역사를 직시하는 영화 ‘암살’은 광복 70년을 맞은 대한민국의 씁쓸한 현실을 돌아보게 합니다. 망각을 강요하는 권력과 정직한 역사를 지키려는 세력 간의 기억을 둘러싼 투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