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의 시의 눈]강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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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광 시인이 ‘시의 눈’이란 테마로 매주 월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영광 시인은 1998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해 의욕적으로 활동 중인 중진시인으로서 노작문학상, 지훈상, 미당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고려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강가 ―이성복(1952∼ )

내가 밥 먹으러 다니는
강가 부산집 뒤안에
한참을 늘어지게 자던 개,

다가오는 내 발자국 소리에
깨어나, 먼 데를
보다가 다시 잠든다

그 흐릿한 눈으로
나도 바라본다,

어떤 정신 나간 깨달음처럼
허옇게 펼쳐진
강 건너 비닐하우스를


늘 가는 식당이 있고 늘 보던 개가 있고, 개의 시선을 따라 강 건너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특별할 것 없는 풍경에 어려울 것 없는 표현들이다. 그러나 기승전결의 전개 가운데 인간과 짐승의 구분이 문득 지워지고, 이지적 분별이 가신 ‘흐릿한 눈’ 하나가 새로 태어나 더 멀리, 더 깊이 무언가를 본다.

한시에서는 시를 시가 되게 만들어주는 시상의 핵심 부위를 자안(字眼)이라 부른다. 다른 글자들과 구별되는 어느 한 글자가 ‘시의 눈’이 되어 작품 전체를 생생히 살아나게 한다는 것이다. 옛 시인들은 시의 눈을 찾는 연습을 시 읽기와 짓기에 꼭 필요한 공부라 여겼다. 시에 적중한 말들은 크게 복잡할 것 없는 표현 속에 결코 단순치 않은 생각과 감정을 머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시의 경우에 자안은 특정 시구와 행, 나아가 연 단위로 확장될 수 있다.

이 시에서는 마지막 연의 직유 문장이 자안에 해당한다. 흐린 눈에 들어온 흐린 풍경 자체는 전언의 일부이다. 분별지의 자발적 정지 없이는 원래 깨달음에 스치기 어렵다. 그래서 그것은 ‘정신 나간’ 상태로 그려져 있는데, 이 상태는 또 속이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한 비닐하우스의 속성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사물과 관념의 적실한 견줌이 비근한 일상 체험을 시적 발견의 순간으로 들어올린 것이다. 빛을 지녔으되 번쩍거리지 않는 시인의 심안(心眼)이 깨달음의 신비를 거쳐 시의 광채 어린 눈에 도달한 드문 사례이다.

이영광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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