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한여름이면 전통 한옥에서 발은 필수품이었다. 강한 햇볕을 막아주면서 시원한 바람은 통하게 했고, 발 틈새로 바깥을 내다보면서도 멀리서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오늘날 도시의 빌딩 사무실과 아파트 주거공간에서 그 기능을 담당하는 게 블라인드이다. 어쩌면 우리 삶의 경계라는 것이 이처럼 열리고 닫힘의 중간, 내지는 열림과 닫힘이 함께하는 공존의 형식이 아닐까 싶다.
올해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선보인 양혜규의 ‘성채(Cittadella)’(그림·2011년)는 186개의 다채로운 알루미늄 블라인드로 이루어진 대형 설치작품이다. 661m²(약 200평)나 되는 미술관 2층 공간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이다. 수평의 알루미늄 박판들을 수직으로 층층이 늘어뜨린 블라인드를 각각 천장에 매달아 다양한 높이와 각도로 구성해 놓았다. 작가는 여기에 6대의 움직이는 라이트를 설치하여 블라인드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빛의 안무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명암의 변화와 다채로운 색채의 향연은 몽환적이다.
‘성채’는 이렇듯 압도적인 시각뿐 아니라 공감각적 교감을 유도한다. 마이크에 대고 말하면 그 소리에 따라 조명의 색상도 변한다. 또 관람자가 지나가면 도처에 장착된 분향기에서 향기를 내뿜어 후각을 자극한다. 흙 나무 바다 풀 등으로 이뤄진 자연의 내음으로 관객들은 도심의 빌딩 속에서 고향의 시골 정경과 잃어버린 자연을 회상하게 된다. 또 작품 중간중간에 설치된 비디오에서는 서울과 베네치아의 가난한 거주자와 집 없는 이들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여준다. 블라인드 숲은 도시의 삶을 은유하고 거기서 배제된 이들이 블라인드가 만든 열린 공간, 틈새 공간에서 임시 거주지를 얻은 셈이다.
‘성채’라는 제목에서 보듯 이는 자신의 영역을 경계 짓기 위해 벽을 높이 쌓는 세상에 대한 은유다. 그러나 양혜규의 블라인드 성채는 빛에 따라 움직이고 소리에 반응하며 또 향을 내면서 그 분할과 제한을 유연하게 허물어뜨린다. 작가는 엄격하고 딱딱한 구조와 그와는 대조적인 유동성에 주목하여 경계와 분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2000년대 초부터 블라인드 작업을 선보인 작가는 베를린에 기반을 두고 서울과 독일을 오간다. 관람자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블라인드의 열린 정도가 제각기 다르듯 문화적 차이와 개인의 시각은 다양하고 절대적 구획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중간’이 주는 유동성이 우리에게 공존의 기쁨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한여름 날, 숨통 트이는 한옥의 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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