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대신 기호로만 이야기 한편 만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0일 03시 00분


中 미술가 쉬빙의 ‘地書’ 국내 출간… 2500개 기호로 120쪽 스토리 구성

‘지서’에서 출근을 앞둔 미스터 블랙이 옷을 이것저것 입어본 뒤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내용을 담은 페이지. 헤이북스 제공
‘지서’에서 출근을 앞둔 미스터 블랙이 옷을 이것저것 입어본 뒤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내용을 담은 페이지. 헤이북스 제공
‘글자 없는 소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지서(地書·헤이북스)’가 그렇다. 저자 쉬빙(徐빙)은 중국의 서예가이자 설치미술가다. 그가 ‘만든’ 소설 ‘지서’는 글자가 하나도 없다. 글자가 없으니 소설을 ‘썼다’고 할 수도 없다. 120쪽의 책은 2500여 개의 기호만으로 이뤄졌다. 쉬빙은 7년 동안 세계를 돌면서 공항 표지판, 화장실 안내판, 인터넷 이모티콘, 이정표, 국제 표준화기구 상징물 등을 모았다. 그 기호들로 이야기가 이뤄졌다. 저자는 ‘지서’에 앞서 자신이 만들어낸 문자로 쓴 책 ‘천서(天書)’를 내기도 했다.

‘지서’의 내용은 이렇다. 평범한 직장인 ‘미스터 블랙’이 오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겪은 일들이 펼쳐진다. 미스터 블랙은 화장실 앞 남녀 기호의 그 남자다. 알람 소리에 맞춰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화장실에서 배변 문제를 잠시 겪는다. 직장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는 땀을 뻘뻘 흘리며 긴장하기도 한다. 점심으로 스테이크를 먹을지 국수를 먹을지 고민한다. 블랙은 온라인에서 데이트할 사람을 구하고 약속을 잡아선 만나러 간다. 이 모든 이야기가 기호로 전개된다.

“이 책의 해석 가능성은 당신이 어떤 언어를 쓰고 있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글을 읽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도 달려 있지 않다. 다만 당신이 얼마나 동시대의 삶에 깊이 관여되어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저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블랙은 라코스테, 아디다스, 나이키 신발 중 어느 걸 신을지 고르고, 화장실에선 스마트폰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검색한다. 출판사 측은 “문맹자도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낯설고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글자#기호#이야기#地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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