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밀고 바깥 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 이런 허름한 헤르메스 봤나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 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 내가 그 섬을 떠나 너를 까마득하게 잊어먹었을 때 너는 밤하늘에 마이크를 대고 별을 녹음했지 태동(胎動)하는 너의 사랑을 별에게 전하고 싶었던가, 네가 그 섬을 아예 떠나버린 것은
그대가 번호 매긴 이 섬의 아름다운 것들, 맨 끝 번호에 그대 아버지의 슬픈 바다가 롱 숏, 롱 테이크되고; 캐스팅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는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땜에 영화관을 나와서도 갈 데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휘파람 불며 신촌역(新村驛)을 떠난 기차는 문산으로 가고 나도 한 바닷가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일 포스티노’는 이탈리아의 한 섬에 망명 온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그의 우편배달부 마리오 루폴로를 주인공으로 사랑과 우정, 시와 인생의 문제를 잔잔히 풀어낸 영화이다.
“선생님, 어떡하면 좋지요? 저는 사랑에 빠졌어요.”
“거기엔 치료약이 있다네.”
“아니에요. 약은 필요 없어요. 저는 계속 아프고 싶어요.”
배달부는 여관집 아가씨 베아트리체 루소에게 반해 저 지경이 된다. 사랑은 누가 심장을 쥐기라도 한 듯 대책 없이 아프고 행복한 사태이다. 여자를 꾀려고 시를 외는 마리오와 그걸 알고도 ‘은유라는 백색무기’를 전수하는 시인과 또 그 유혹에 넘어가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보는 이를 웃고 울게 만든다. 떠나간 시인이 오래 섬을 잊은 동안 배달부는 그가 남긴 축음기에 섬의 아름다움을 녹음한다. 바람소리, 파도소리, 태아의 심장 박동에 더해 별이 빛나는 밤하늘마저 음악처럼! 하지만 그는 시를 읽으러 집회에 나갔다가 죽어 섬을 ‘아예 떠나버리’고 만다. 저편 세상에 사랑을 배달하러 가듯.
너무 늦게 섬을 찾은 시인은 회한에 젖고 시의 처음부터 그를 대리하던, 여기 한국의 시인 또한 이상한 가책에 젖어 집 없는 사람처럼 거리를 헤맨다. 생의 어떤 ‘회한’에 대해 우리는 늘 회피하려 하지만 언젠가는 그걸 끄집어내어 앓아야 할 때가 오기도 할 것이다. 그 무엇에 대해서건 ‘아프고 싶’은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살고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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