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감(美感)을 미감(味感)으로 이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미술관과 갤러리 주변에는 수많은 음식점과 카페가 있다. 부속시설로 붙은 곳도 적잖다. 하지만 전시와 연결한 먹을거리가 ‘모두 맛있었느냐’ 묻는다면 답은 ‘아니요’다. 자신 있게 알릴 만하다 싶은 곳은 절반 정도였다. 그에 대한 만회의 뜻으로 소개하는 마지막 식도락 공간. 한 달에 적어도 네댓 번은 찾아가는 단골집 ‘마토’다.
장순규 사장(46)은 2002년 봄 멀쩡하게 잘 다니던 반도체 회사를 입사 11년 만에 그만뒀다. 한식과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딴 뒤 그해 12월 서울 동작구에 작은 파스타 집을 열었다. 강남으로 위치를 옮기고 2011년 메뉴와 실내공간을 대폭 갈아엎은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수익을 고려한 변화였지만 처음부터 사실 이탈리아 요리는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파스타보다는 차림표에 없는 김치찜, 만둣국, 갈비구이를 스페셜로 더 많이 내놓았다. 와인을 좋아하지만 집에서 같이 놓고 먹는 건 어머니가 만드신 김치와 사골 곰탕이다. 식당에서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지 않나 생각했다.”
스파클링 와인과 한식을 주력 메뉴로 하겠다는 소리에 주변 많은 사람이 ‘미쳤느냐’며 말렸다.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와인 소재 일본만화에서 “한식과 와인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정설인 양 다루기도 하던 때였다. 장 사장은 음식점의 선택이 크게 두 가지라고 봤다. 가급적 많은 이가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을 내놓느냐, 아니면 만드는 사람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그대로를 내놓고 그에 동의하는 손님을 기다리느냐. 선택은 후자였다.
대단한 맛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 잘 빚은 조선간장의 묵은 김치 닮은 냄새가 기본. 육수는 다른 재료를 전혀 넣지 않고 양지머리, 소머리뼈, 사골만 넣어 끓인다. 설날에는 그 국물로 떡국을 끓여 낸다. “김 부스러기나 마늘은 넣지 않는다. 그게 내가 어릴 때 맛있게 먹은 떡국이니까. 아내를 포함해 다른 누구도 그 맛을 내 줄 수 없단 걸 알고 요리를 시작한 거다. ‘맛있다’는 건 전적으로 ‘혼자 생각’이다.”
큰길 건너편 313아트프로젝트에서 21일부터 9월 25일까지 프랑스 조각가 다니엘 뷔랑(77)의 개인전 ‘공간의 미학’이 열린다. 특별한 재료는 없다. 아크릴판, 유리, 거울을 철제 프레임에 짜 맞춘 ‘줄무늬 조각’이다. 뷔랑은 흰색과 검은색이 일정한 너비로 교차하는 줄무늬를 ‘완성된 중성적 미술품’이라고 보고 평생 그것을 변주했다.
1986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은 그의 ‘줄무늬 취향’은 파리 팔레 루아얄 앞뜰에 기념비적 설치물로 남았다. 1636년 재상 리슐리외의 저택으로 지어진 이 건물 앞에 1986년 흑백 줄무늬 기둥 260개가 들어섰을 때 많은 사람이 “현대예술이 역사를 모독했다”고 비난했다. 2010년 600만 유로를 들여 보수한 이 ‘줄무늬 기둥 정원’은 지금 파리에서 가장 사랑받는 공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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