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아기 돼지 삼형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2일 03시 00분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나와 자운(子雲) 형, 사경(思卿)은 한마을에 살았다. 이번 봄여름 사이 오랫동안 가물었기에 세 집 모두 담장을 수리하기로 하였다. 나는 종들에게 일을 시키고 한 번도 가서 살피지 않았는데 며칠 만에 일이 끝났다. 사경 역시 나처럼 하였다. 단지 자운 형만은 매일같이 담장 수리하는 곳에 나가 앉아 몸소 먹줄로 재고 기초를 다지고 하였으며, 심지어 돌 하나 놓고 흙 하나 쌓는 일까지도 모두 직접 지시하였다. 밤이면 내일 일을 계획하고 새벽이면 일어나 종들을 깨워 내보냈다. 일손이 부족하면 마을의 한가한 사람, 아이들까지도 불러다 썼다. 작업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록 몇 자를 쌓았더라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헐어버리고는 다시 쌓았다. 하루에 몇 자 쌓지 못하니 마치 게으름을 피우는 것 같기도 하고, 중간에 일을 반드시 며칠씩 쉬니 일을 버려둔 것 같기도 하였으며, 진흙이며 모래, 자갈, 기와가 단단히 굳기를 기다려 다시 일을 하니 마치 괜히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하기를 거의 한 달. 심신이 다 지치고 나서야 담장이 완성되었다.

평소 우리 마을에는 많은 벗들이 종종 투호를 하거나 술을 마시러 모이곤 하였다. 이번 여름에는 더욱 자주 모였고 자운 형도 늘 즐겼던 모임인데 담장을 쌓기 시작한 이후로는 발길을 끊고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초청하면 번번이 일이 있다며 사양하니 나와 사경은 이상하게 여기고 비웃다가도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였다.

강박(姜樸·1690∼1742) 선생의 ‘담장에 대한 설(牆說)’입니다. 담 쌓는 일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어질 내용이야 보나 마나입니다. 어린이들 동화책에도 나오는, 모두들 너무 잘 아는, 그러나 실천은 참 못 하는 진리.

큰비가 왔다. 내 담장이 먼저 넘어지고 사경의 담장이 그다음으로 넘어졌다. 오직 자운 형 집의 담만이 온전해서 흙이며 벽돌이 쌓은 그대로였다. 나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무릇 일이란 이루지 못하는 게 걱정이 아니라 쉽게 무너지는 게 걱정이다. 만드는 사람이 처음부터 오랫동안 온전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닌데 늘 무너지는 이유는 임시방편이나 쓰고 게으름 피우는 데 익숙해서 시작할 때 힘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 담장만 그러할까?(夫事不患於不成, 而患於易壞. 盖作者未始不欲其久全, 而常至於壞廢者, 以狃於姑息婾惰, 不用力於其始也. 豈惟墻爲然哉?)”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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