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셔츠는 윤 이사가 가장 좋아하는 옷이다. 단추를 채워 단정하게 입으면 정장으로도 손색없고, 단추를 풀어 소매만 슬쩍
걷어 올려도 회식 자리에 어울리는 편한 옷으로 변신한다고 말한다. 하의는 통 넓은 검정 팬츠와 매치해 세련된 커리어우먼 룩을
연출했다. 윤 이사 뒤쪽으로는 마세라티 시트에 사용되는 가죽 소재와 자동차 부품들이 전시돼 있다.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네크라인 부분을 부드럽게 드레이프 처리해 여성스러움을 강조한 화이트 블라우스. 타이트한 검정 스커트를
받쳐 입어 정장 이미지를 더했다. 윤 이사는 화려한 색이나 디자인은 피하고, 선을 살려주는 스타일을 좋아한다. “마세라티가 어떤 티(tea)예요? 처음 마세라티 브랜드 마케팅을 맡았을 때 누군가 제게 한 질문이었어요. ‘마시는 차’인 줄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 그만큼 도전할 일이 많다는 뜻도 됐어요. 이전 직장이 다 차려진 밥상에 제가 먹을 반찬을 올려놓는 거였다면 여기에서는 밥상부터 제가 차리기 시작한 거죠.
마세라티가 지난해 국내에서 전년 대비 500%에 가까운 판매성장을 기록했을 땐 정말 가슴이 벅찼습니다. 도전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만큼 많이 노력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탈리아 수입차 마세라티의 공식 수입 판매사 (주)FMK에서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는 윤수미 이사(45). 그는 흔히 남성 영역으로 인식되는 자동차 업계에서 여성 특유의 감성과 전공을 살린 문화 마케팅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다.
“자동차는 보통 남성들의 관심사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여성이 갖고 있는 장점들을 잘 살리면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섬세함, 꼼꼼함, 부드러움, 그리고 여성만의 ‘촉’ 같은 것들이죠.” 윤 이사는 “마세라티가 ‘기술을 뛰어넘는 예술’ 이라는 철학을 내세우고 있어 여성 고유의 감성을 살린 문화 마케팅 전략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 봄 열린 G-서울 국제 아트페어와 올여름 대관령국제음악제 등 여러 문화 행사를 후원하면서 다양한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 일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문화 마케팅을 좋아하는 데는 “어려서부터 외국에 살면서 접한 다양한 문화적 경험과 음악역사학 전공도 한몫 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주말 아침 백화점 돌며 아이디어 얻어
“가끔 주말 아침 일찍 백화점에 갑니다. 뭘 사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들러보면서 시장 트렌드를 파악하고 아이디어를 얻죠. 마케팅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업무 공간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는데는 한계가 있죠.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장소를 접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얻는 아이디어가 70% 이상인 것 같습니다.”
윤 이사의 출근 시간은 오전 7시 반. 딸아이를 등교시키고 바로 사무실에 가면 그 시간이다.
“저는 회사 출근 시간인 9시까지 1시간 반 가량 혼자 있는 아침 시간을 하루 중 가장 좋아합니다. 최고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고, 생각도 정리하는 ‘오직 나만의’ 소중한 시간이죠.
업무 시간은 주로 회의와 사내외 미팅들로 분주하고, 퇴근 시간은 일정치 않아요. 마케팅 업무라는 게 행사가 있으면 밤샘이고, 미팅이나 회의를 챙기다 보면 퇴근 시간 넘어 컴퓨터 앞에 앉을 때도 많습니다. ‘집으로는 일을 가져가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에 웬만하면 일은 회사에서 마무리하고 퇴근하거든요.”
워킹맘들에게 퇴근은 집으로의 또 다른 출근이다. “집에 가면 아내로, 엄마로 돌아가야 하므로 온전한 자기 시간인 아침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그는 말한다.
“친정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돌봐주고 계세요. ‘손자손녀도 예쁘지만, 내 딸이 마음 편히 일해 멋지게 성공하면 더 바랄게 없다’고 늘 말씀하시죠. 정말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앞만 보고 달릴 수 있었습니다. 친정어머니의 헌신이 감사하고 또 죄송스럽지만, 이 또한 제가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윤 이사는 “일할 때는 아이에게 전화 한 통화 안 하는 냉정한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아이들을 생각하면 늘 가슴 한편이 묵직해지지만 일하는 공간에서만큼은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지우고 일한다”고 말한다.
“육식 좋아하고, 몸에 좋다는 채소, 과일은 멀리하고 살았어요. 그래도 체력 하나는 문제없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크게 아팠죠. 많은 걸 다시 생각하게 되더군요. 요즘 헬스클럽에도 등록했고, 채소도 부지런히 먹고 있습니다(웃음). 모든 건강 문제의 근원은 스트레스라고 하는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윤 이사는 일도 바쁘고 잠시 틈이 생기면 아이들과 함께 하느라 취미 생활을 즐기거나 규칙적인 운동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성격이 예민한 편이고 모든 일을 완성도 높게 해내려다 보니 스스로 피곤하게 사는 스타일이죠. 조금은 내려놓으려고 노력 중인데 쉽지 않네요. 그저 모든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자 노력하고,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찾는 게 건강을 지키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는 몸에 잘 맞는 셔츠와 스커트 차림을 주로 하는데, 화이트 셔츠를 특히 좋아한다. 단순하지만 부분적인 디테일에 포인트를 주면 오히려 감각적이고, 연출하기에 따라 어떤 자리에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편하고 느슨한 옷을 입으면 그만큼 긴장감이 없어져요. 직원들에게도 직장에서는 직장인답게 입어야 한다고 말하죠. 우리 모두 브랜드를 대표하는 홍보대사라는 걸 항상 잊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최근 제 2의 전성기를 맞은 차승원이 마세라티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마세라티는…
1914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마세라티 형제가 창립한 자동차 브랜드다. 이들은 창고를 개조한 작업장에서 레이싱에서의 승리를 목표로 자신들만의 레이싱카를 만들어냈다. 마세라티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레이싱의 역사이자 자동차의 역사로 회자되며 자동차 마니아들의 드림 카로 손꼽히고 있다.
마세라티 형제에게서 오르시 가문, 시트로엥, 피아트를 거쳐 피아트의 계열사인 페라리로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본격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이탈리안 감성을 녹여낸 디자인과 독특한 엔진 사운드가 마세라티 브랜드의 대표 상징이 됐다. ‘사운드 디자인 엔지니어’를 두고 피아니스트, 작곡가 등이 함께 참여하여 악보를 그려가며 ‘작곡’해 만들어내는 엔진 사운드 제작 과정은 유명한 일화다.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 배우 카메론 디아즈 등이 애용한 차로도 유명하다. 국내에는 2007년부터 정식 수입되고 있다.
윤수미 이사는…
1969년생.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독일로 이주,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뒤셀도르프에서 성장했다. 1987년 미국으로 유학, 브라운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음악역사학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00 년도에 귀국, IT관련 회사에서 잠시 글로벌 마케팅 업무를 하다가 2003년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에 입사하면서 자동차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7년간 벤츠코리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팀에서 마케팅, 고객관계관리 업무를 해왔다. 2010년 마세라티 공식 수입판매사인 (주)FMK로 자리를 옮겨 마니아들에게만 알려진 마세라티 브랜드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주력했다. 현재 마세라티 마케팅 총괄 이사로 재직하며 마케팅 관련 모든 업무를 맡고 있다.
글/김경화(커리어 칼럼니스트, 비즈니스 라이프 코치) 사진/홍혜전(스타일 포토그래퍼, 스튜디오 루브르9) 동아일보 골든걸 goldengir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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