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때론 길을 잃어도 좋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3일 03시 00분


지난주에 후배랑 충남 천안시 외곽에 있는 장소를 찾아갈 일이 있었다. 미리 검색해 메모했지만 내비게이션이 고장 난 후배의 자동차가 영 미덥지 않았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국도로 접어들 때까지는 무난했는데 한적한 지방도로로 들어서자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갈림길에서 50%의 확률을 믿고 왼쪽 길을 택했는데 웬걸, 한참을 가다 보니 천안을 벗어나 진천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길을 잘못 든 게 분명했다.

한참을 되돌아와야 했지만 그 바람에 작은 저수지를 끼고 가다가 아주 경치 좋은 곳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그 식당 할머니에게서 마을의 유래까지 들을 수 있었다. 아마 길을 잃지 않았다면 평생 와 볼 일이 없었을 예쁜 장소를 알게 되었으니 우린 “때론 길을 잃어도 좋다”라며 속없이 즐거웠다.

사실 요즘은 웬만해선 길을 잃지 않는다. 전에는 낯선 곳을 찾아가려면 표지판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차창을 몇 번씩 내려 물어보며 확인해도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 나오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내비게이션의 말만 잘 들으면 목적지까지 정확하게 도착한다. 그 낭비 없음은 속도의 시대에 찬양할 일이지만 대신 예상치 않은 상황과 마주치는 기쁨은 누릴 일이 없게 되었다.

지난달에는 ‘비운의 우주인’이라고 불렸던 고산 씨를 만났다. 그는 1만8000 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을 뚫고 한국 최초의 우주인으로 선발되어 러시아에서 1년 반 동안 우주비행 훈련을 받았으나 2008년 3월 우주비행 한 달을 앞두고 갑자기 교체되는 불운을 겪었다. 지금은 3D프린팅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그는 자신은 ‘비운의 우주인’이 아니라 ‘행운의 창업자’라고 말했다. 비록 우주로 가는 길에는 불운이 따랐지만 그 경력 덕분에 창업 초기에 가장 중요하다는 홍보가 저절로 되고 있으니 ‘행운의 창업자’라는 것이다.

보통은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하지만 인생을 길게 보면 실수나 실패가 반드시 마이너스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앞으로만 내달리는 성공 가도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것들이 자산이 되어 인생을 더 풍부하고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고 씨 역시 ‘불운’에서 배운 것들로 행운을 만들어 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새로운 길을 찾을 수만 있다면 때로는 길을 잃어도 좋다. 그날 후배랑 낯선 곳을 헤매며 만나는 것들을 즐기고도 결국 우리는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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