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일본 정부는 일본군 등 126만 위의 유골을 해외에서 수습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수습해 온 유골은 고작 442위다. 일본이 2850배로 많다. 이 격차는 어디서 왔을까.
국내총생산(GDP)은 일본이 한국의 3배 정도지만 경제력 차이로만 돌릴 수는 없다. 물론 한국이 ‘먹고사는 일 말고’ 다른 데 눈을 돌릴 경제적 여유가 생긴 것이 얼마 안 된 이유도 있지만 적어도 1980년대에는 유골 봉환 작업을 본격적으로 착수했어야 했다. 2004년 특별법이 제정돼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가 발족하기 전까지 한국 정부는 수십만의 해외 강제동원 사망자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선 적이 없다. 그 격차는 결국 의지와 철학의 차이다.
일본은 후생성 원호국에 업무를 전담시켜 1967년부터 조사단을 300차례 넘게 해외에 파견했다. 미국은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는다(You’re not forgotten)’는 기치 아래 450명의 전문 인력이 전쟁·분쟁 지역에서 사망한 군인 등 미국인 유해를 끝까지 추적해 안장한다.
한국은 어떨까.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자 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대일항쟁기 위원회)가 진상규명위의 뒤를 이어 유골 실태 조사 및 봉환 업무를 하고 있지만 유골 조사 업무는 단 4명이 담당한다. 이 위원회가 강제동원 피해조사, 희생자 및 유족 여부 심사와 보상을 모두 맡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위원회 조직(78명)과 예산(연 사업비 76억 원)이 너무 작다. 물론 위원회도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강제동원 피해 관련 민간단체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할 테다.
문제는 이 위원회마저 한시 조직이어서 법률에 따라 올해 말이면 활동을 종료한다는 것. 그나마 6월 25일 활동 종료를 닷새 앞두고 6개월 연장안이 국회를 통과한 덕에 연말까지 유지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업무를 행정자치부 등이 잇게 되지만 행자부 1개과(약 5명)와 공식 권한이 없는 민간 재단이 맡을 것으로 전망돼 외교 협력이 필요한 유골 봉환에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한국의 일제 강제동원 사망자 유골 봉환 사업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대일항쟁기 위원회를 상설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한국이 일본 정부의 과거사 왜곡을 비판할 때 “자국민 유골도 방치하는 나라가 말이 많다”며 국제사회가 비웃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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