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댓 이즈/제임스 설터 지음·김영준 옮김/436쪽·1만3800원·마음산책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국인 남자의 일대기 담은 소설
작가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
한 남자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해군으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사람이다. 종전 뒤 귀향한 남자는 하버드대에 편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올 댓 이즈’는 필립 보먼이라는 미국인 남자의 일대기다. 공연 잡지 기자생활을 잠깐 하던 보먼은 출판사 편집자로 방향을 튼다. 뉴욕에서 활동하면서 그는 많은 작가들과 출판업자들을 만나 교류하면서 커리어를 쌓아 간다. 그는 분주한 나날들을 보내면서 편집자로서 탄탄하게 자리 잡는 모습이다. 길지 않은 결혼생활 끝에 이혼한 그는 몇몇 여성과 사귀고 헤어지고, 큰 배신을 당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의 생애에 일어난 사건들은 여성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다. 관심도 배경도 달랐던 아내 비비언과는 처음부터 결별이 예정돼 있었다. 어머니를 간병하고자 보먼의 곁을 떠난 비비언은 얼마 뒤 편지로 이혼을 통보한다. 작가는 두 사람이 헤어지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지도 않고, 이혼 통보로 인해 보먼이 느끼는 감정도 상세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친구와 자리를 함께했다 일어선다는 느낌이다. 제임스 설터 특유의 스타일이기도 하다.
이혼녀 크리스틴과 살 집을 대출로 장만하지만 크리스틴은 바람이 난 데다 집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까지 제기한다. 수년 뒤 크리스틴의 딸 아네트와 우연히 만난 보먼은 아네트와 잠자리를 함께한 뒤 아네트를 홀로 놔두고 떠난다. 크리스틴에 대한 복수심 때문인지, 중년의 자신과 스무 살 아네트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인지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다. 보먼이 겪는 사건 하나하나가 연애소설 한 편씩이 될 만한 진폭인데, 설터의 이야기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별것 아닌 듯 느껴진다. 설터가 감정의 물기를 남김없이 빼내고 오로지 건조하고 담담하게 소설을 전개해서다. 가령 이렇다. “보먼은 법정에서 그녀를 처음으로 다시 봤다. 그녀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멍하게 듣고 있던 배심원은 이윽고 그녀가 증언하려 일어서자 주의를 기울이는 듯 보였다. 보먼은 그녀의 거짓말에 기가 찼다. 그의 변호사를 쳐다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변호사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지극히 미국적인 내용이어서 우리 독자들에겐 낯설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도시에서 바쁜 삶을 살면서도 그다지 뚜렷한 목적이 없는 모습, 숱한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모습들이 오히려 현대인의 공허함을 살려냈다는 평가다. ‘다 그런 것(All that is)’이라는 제목은 그 주제의식에 무게를 싣는다. 6·25전쟁에서 전투기를 몰았고 귀향해 작가로서의 명성을 쌓은 설터의 모습과도 묘하게 겹쳐진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지만 미국에서 제임스 설터의 지명도는 높다. 이 책은 지난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추수감사절 연휴 때 읽은 책으로 잘 알려졌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줌파 라히리는 설터의 작품에 대해 “부끄러울 정도로 큰 빚을 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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