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오의 우리 신화이야기]궤눼깃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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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궤눼깃당’이 있는 동굴의 입구. 최원오 교수 제공
제주도에서 ‘궤눼깃당’이 있는 동굴의 입구. 최원오 교수 제공
제주도의 ‘궤눼깃당본풀이’는 궤눼깃또라는 당신(堂神·마을신)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구전신화다. 천자국의 백주또가 천기(天氣)를 짚어보고는 천생(天生)의 신랑감이 제주도 송당리에 살고 있음을 알았다. 백주또는 곧장 제주도로 들어가 소천국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아기는 이리 많이 탄생하는데 그리 놀아서 살 수 있습니까? 농사를 지으십시오.” 여섯째를 임신하고 있던 백주또의 제안에 소천국은 쟁기 지고 소 몰고 나가 볍씨 아홉 섬지기나 되는 넓은 밭을 갈았다.

백주또가 국 아홉 동이, 밥 아홉 동이의 점심을 밭에 놓고 집으로 돌아가고 소천국은 계속 밭을 가는데, 마침 지나가던 중이 소천국에게 시장기를 호소했다. ‘먹으라고 하면 설마 다 먹겠는가.’ 그런데 밭을 갈다 배가 고파 점심을 먹자고 보니 한술도 남아 있지 않았다. 소천국은 하는 수 없이 밭 갈던 소를 잡아 구워 먹고 남의 집 검은 암소 한 마리도 더 잡아 구워 먹었다. 그러고서야 요기가 된 소천국, 자기의 배로 밭을 갈기 시작했다. “소천국님아, 어째서 배때기로 밭을 갑니까?” 백주또의 물음에 소천국이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당신의 소를 잡아먹은 것은 떳떳한 일이지만, 남의 소를 잡아먹었으니 소도둑놈이 아닙니까? 오늘부터 살림을 분산합시다.”

뜻밖에 이혼을 당한 소천국은 배운 것이 사냥이라 여러 짐승을 잡아서는 정동갈의 딸을 소첩으로 삼아 고기를 삶아 먹고 함께 사는데, 백주또가 세 살 된 아기(궤눼깃또)를 업고서 찾아와 아기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아기는 아버지 소천국의 수염을 잡아당기고 가슴을 짓눌렀다. “이 자식은 뱄을 때에도 부모 살림을 분산시키더니 태어나서도 이런 나쁜 행동을 하는구나.” 화가 난 소천국이 아들을 석갑에 넣어 동해바다에 띄워버리니 석갑은 용왕국에 들어가 갖은 조화를 부렸다. 용왕의 막내딸만이 석갑을 발견하고 문을 열었다. 옥 같은 도령이 앉아 있었다. “어찌하여 왔느냐?” 용왕이 물었다. “천자국의 난을 평정하러 가는 길입니다.” 용왕은 도령을 천하명장으로 생각하고 막내딸과 결혼시켰다. “무엇을 잡수십니까?” “돼지도 통째로 소도 통째로 먹습니다.” 용왕은 날마다 돼지 잡고 소 잡아 사위를 대접했다. 그러나 창고가 점점 비어가자 사위와 막내딸을 석갑에 넣어 물 바깥으로 띄워버렸다.

장인에게 쫓겨난 궤눼깃또, 천자국에 도착하고 보니 북쪽 오랑캐가 천자국을 치려는 중이었다. 천자가 궤눼깃또의 손목을 부여잡고 오랑캐를 쳐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궤눼깃또는 싸움터에 나아가 머리 둘, 셋, 넷 달린 장수를 차례로 죽이고 순식간에 난을 평정했다. “땅 한쪽을 떼 줄 테니 땅세 받아먹고 사십시오.” “싫습니다. 제주도로 돌아가겠습니다.” 궤눼깃또는 천하가 요동치게 대포 소리를 내며 제주도로 돌아왔다. “세 살 때 죽으라고 버린 상전님이 아버지를 치려고 왔습니다.” 하인의 말에 소천국과 백주또는 무서워 도망가다 죽어 각각 하송당리 고부니마루와 상송당리 당오름의 당신으로 좌정하고, 궤눼깃또는 별 솜솜 달 솜솜한 아랫궤눼기의 당신으로 좌정했다. “소도 통째 돼지도 통째로 바치라.” “가난한 백성이 어찌 소를 잡아 위하겠습니까? 돼지를 잡아 위하겠습니다.” 김녕리 사람들이 간청했다. “그리하라.” 이리하여 궤눼깃또는 돼지를 제물로 받는 당신이 되었다. 백성의 삶은 항상 어렵다. 궤눼깃또는 ‘위함을 받는 자’가 ‘위하는 자’의 어려운 사정을 먼저 살펴야 할 이유를 설명해 주는 신화적 근거인 셈이다.

최원오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궤눼깃또#제주도#궤눼깃당본풀이#마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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