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 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시는 입을 열고 살을 내놓고 있던 개조개가, 사람 손이 닿자 그걸 거둬들여 다시 입 다무는 동안에 스쳐가는 상념을 기록한다. 이 상념을 일으켜 유장히 움직여가는 것은 은유적 상상력이다. 조개와 인간의 견줌을 큰 그림으로 하여 조개의 발(부족)을 인간의 맨발에, 그 껍데기(‘몸’)를 인간의 집에 빗대고 있는 것이다. 인간 삶의 진실을 조개의 생태를 빌려 적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여기에 불교적 인식을 곁들여 우리의 생애가 고행과도 같은 배밀이이자 헐벗은 탁발임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스승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뒤늦게 도착해 구슬피 우는 마하가섭에게 붓다가 발을 들어 내보인 것은 괜찮다, 나 여기 있다, 뒷일을 부탁한다는 뜻의 어루만짐이었을 것이다. 붓다야말로 맨발의 고행자이자 저 ‘금강경’이 들려주듯, 누더기를 두른 탁발승단의 리더가 아니었던가. 배고픈 ‘집이 울 때’ 밥 구하러 나가 헤매는 우리는 다, 구두 신고 ‘가다마이’ 걸쳤을 뿐인 맨발의 걸식자들이다.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조그맣게 기어 다니며 이 차가운 세상의 한 귀퉁이를 헐어 일용할 양식을 얻어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 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움막으로 돌아오는 생. 이 세속의 맨발에 어떤 성스러운 느낌이 감돈다 하면 과장일까. 느림보 걸음 속에 매의 눈이 빛나는, 문태준 청년기의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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