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추리소설로 9만부 대박… 서울대 출신 동화작가 허교범씨
진지하고 교훈적 동화 강박 벗고 우정-모험에 신기한 도구 곁들여
재미있는 얘기로 아이들 사로잡아
어린이 문학 시리즈 이정표 세우고 영화 시나리오-성인 소설에 도전
“(어른들이) 진지하고 성찰적인 동화에 대한 강박을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독서를 교육과 연결시키면 아이들은 책과 멀어져요. 독후감을 내기 위해 책을 읽는 문화가 책을 재미없고 힘든 것으로 만들어요.”
어린이 책에 대한 통념을 허무는 웬 도발적인 주장인가. 최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어린이 소설 작가 허교범 씨(30)의 말이다.
그의 작품 ‘스무고개 탐정’ 시리즈(비룡소)는 어린이 추리소설이라는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순수 문학이 주를 이루던 어린이 책 시장에 ‘재미 문학’을 들고나온 것. 아이들은 그의 책이 주는 재미에 열광하고 있다. 이르면 내달 5권째가 나오는 시리즈는 지금까지 9만 부가 넘게 팔렸다. 1만 부만 팔려도 성공이라는 어린이 책 시장에서 그야말로 ‘대박’이다.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이다. 이른바 명문대를 다니며 고시 공부나 대기업 취업 대신 어린이 소설을 준비하던 그에게 주변에서는 한심하다는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낯선 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친구가 없어 학급문고를 다 읽었어요. 그때부터 이야기에 푹 빠졌어요. 이야기의 매력은 상징과 지식을 담으면서도 직설적이지 않다는 점이죠. 포스트모던의 시대는 하나에서 다층적인 의미를 찾는 시대라고 봐요.”
그는 스타 강사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30여 차례 학교와 도서관에서 아이들의 귀와 눈을 사로잡았다. “소설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하고 어린이들이 읽을 소설을 추천해줘요. 또 책을 장난감처럼 집어던지며 놀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책은 ‘날라리’도 곁에 두고 즐기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야 아이들이 책을 읽어요.”
그의 책은 팬픽(인기 있는 작품을 팬들이 자기 뜻대로 재창작한 작품)의 대상으로도 인기가 높다. 아이들은 그의 탐정 이야기를 마음대로 바꿔, 그야말로 ‘가지고 논다’.
탄탄한 초등학교 고학년 팬층을 보유한 그도 처음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시리즈의 첫 권 ‘스무고개 탐정과 마술사’(사진)로 2013년 비룡소가 주최한 제1회 스토리킹 수상작 공모에 지원했을 때 성인 심사위원들에게 혹평을 들었다. 이야기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묘사가 치밀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어린이 심사위원 100명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165 대 1의 경쟁을 뚫고 당선됐다. 또래 탐정이 고비마다 문제를 풀어가는 추리 기법을 도입한 그의 소설에 아이들은 열광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준비를 많이 했어요. 아이들이 이야기에 우정과 모험, 그리고 신기한 도구가 등장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다만 작위적으로 친구들 간의 우정을 주입하면 안 돼요. 추리소설은 문장력보다 사실을 적시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게 중요해요.”
그에게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근로자 평균 임금보다는 많아요. 하지만 인세가 고정 수입이 아니다 보니 돈이 떨어지기도 해요. 그러면 작가로서의 험난한 삶이 가슴에 와 박히더군요.” 6월 통계청이 발표한 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231만 원가량이다.
시리즈는 12권까지 나올 예정이다. 그는 어린이 문학 시리즈가 10권 이상 나오는 이정표를 세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작가는 (자신의) 책을 쌓아두는 것이 미래를 쌓아두는 것이라고 봐요. 영화 시나리오나 성인 소설도 내고 싶어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