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메하라 류자부로의 유채화 ‘가시와기 뼸이치의 초상’(1951년). 신옥진 씨는 “이번 기증전 전시품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며 “처음엔 되팔기 어렵거나 처치하기가 곤란한 소장품도 기증했다. 하지만 결국 그 선택이 오랜 후회로 남았다. 내놓기 싫은 작품을 내놓아야 떳떳하게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미술관 제공
“당신 그림. 내가 전부 사겠소. 유화, 수채화, 드로잉, 습작까지 모두. 당신이 평생 보지 못한 돈을 지불하겠소.”
“거절합니다. 모두 나라에 기증해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올해 초 국내 개봉한 영화 ‘미스터 터너’에서 영국 화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가 부유한 수집가의 제안을 물리치는 장면이다. 마이크 리 감독은 두 인물의 대화에서 “취미를 위해 아낌없이 지출한다”고 자랑하는 수집가의 오만을 꼬집었다.
신옥진 부산공간화랑 대표(68·사진)의 미술품 기증에는 영화 속 터너가 드러낸 경멸과 비슷한 속내가 깔려 있다. 1975년 화랑을 연 그는 1998년 고향인 부산 시립미술관에 소장품 50여 점을 처음 기증한 뒤 7개 국공립미술관에 700여 점의 작품을 쾌척해 왔다. 어쩌면 이제 별달리 새로운 감흥이 들지 않는 소식. 작품 판매수익 대신 명예를 택한 그의 ‘기증 스토리’는 이미 널리 알려졌다.
유채화만 주로 발표한 박고석 작가의 드로잉 ‘목포항 풍경’(1979년).그런 점에서 9월 20일까지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신옥진 컬렉션’전은 얼핏 공간과 오브제만 달라진 동어반복처럼 보일 수 있다. 국내외 작가 48명의 작품 64점을 모았지만 대작 없이 폭 70cm 남짓한 소품 위주다. 하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내놓는 옹골찬 기운이 전시실을 가득 메운다. 미술품이 갈수록 부유층의 자산관리 수단으로만 주목받는 상황에서 신 대표의 ‘묻지 마 기증’은 늘 미미하나마 분명한 변화의 파동을 일으킨다.
“왜 소장품을 기증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의미 있는 일, 좋은 일을 하려는 게 아니다. 미술품 기증은 내 삶의 투쟁이자 개척 작업”이라고 답했다.
“젊었을 때 유럽 미술관을 구경하다가 중요한 작품이 대부분 개인 기증품인 걸 알았다. 막연히 멋있다 생각했던 일을 나이 들어 시작했지만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처음과 마찬가지로 힘겹다. 우리 사회에는 기증 문화가 없다. 작품 기증 의사를 밝히면 17년 전과 똑같이 ‘저의’를 의심하는 질문을 받는다. 어떤 공무원은 ‘출마하려는 것 아니냐’고 묻더라.”
도예가 권진규가 수채 물감과 흙으로 그린 ‘누드’(연도 미상). 서울대미술관 제공오밀조밀한 소품이 뿜어내는 만만찮은 아우라의 배경에는 하나하나 수집하며 맺고 엮은 사연의 무게가 있다. 박고석 작가의 드로잉 ‘목포항 풍경’은 신 대표가 1979년 서울 대학로의 작가 집에서 받아온 작품이다. 언제나 빈손으로 돌아가면서도 거듭 찾아오는 신 대표가 안쓰러웠는지 스케치북을 보여주던 박 작가가 북 뜯어줬다.
“몇 시간 뒤 박 작가 사모님이 전화로 노발대발했다. ‘나 없는 새 몰래 와서 안 팔 그림을 가져갔다’는 거다. 별수 있나. 도로 갖다 드렸는데 돈은 안 돌려주더라. 몇 달 뒤에야 다시 그림을 주며 ‘절대 어디 되팔지 말라’고 다짐을 시켰다. 결국 팔지 않고 이번에 기증했으니 나는 약속 지킨 거다.”
박수근 장욱진 이응노 등 한국 작가 외에 우메하라 류자부로, 후지타 쓰구하루 같은 일본 작가의 서양화도 다수 포함됐다. 신 대표는 “그 시대 일본 서양화를 적잖이 모은 것 역시 내 오기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한국 1세대 서양화가는 대부분 유럽에서 공부한 일본 작가의 영향을 받았다. 자존심 때문인지 국내 작가에게 영향을 준 흔적이 뚜렷한 일본 서양화가의 작품은 풍성하게 소개되지 못했다. 감춰진 사실을 들춰내 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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