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12권 대하소설, 뮤지컬 재탄생 일제강점기, 서로 얽히고 설킨 인생들 속으로 울고 겉으론 웃는 ‘恨’의 스토리
뮤지컬 같지 않다는 사람이 있다. 연극이라는 사람도 있다. 음악극이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사람도 없지 않다. 신시컴퍼니가 제작비 50억원을 쏟아 붓고 꼬박 3년을 준비한 대작 뮤지컬 ‘아리랑’ 얘기다. 9월5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교향곡이냐 교향시냐를 연상하게 하는 이런 논쟁은 관객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관객에게는 작가 조정래의 방대한 원작(12권이나 된다)을 무대에 적절히 녹여냈는가, 얼마나 큰 재미와 감동을 전달해 줄 수 있느냐가 평가의 유일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실은 흥행과 직결되는 가장 냉엄한 잣대다.
연극연출의 거물 고선웅이 지휘봉을 잡았다. 뮤지컬 아리랑이 다분히 연극적인 요소를 품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른바 ‘고선웅류(流)’가 아리랑에 완벽하게 녹아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작을 잘라내어 압축하고, 음악을 융합하는 과정에서 그도 많은 부분과 타협한 티가 났다.
뮤지컬 아리랑의 음악은 당연히 아리랑이 주연이다. 아리랑은 주제선율이면서 온갖 넘버들에 스며들어 있다. 뮤지컬 아리랑의 정서를 딱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역시 ‘애이불비(哀而不悲)’일 것이다. 슬프지만 겉으로는 슬픔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리랑은 애이불비의 노래다. 아리랑은 웃으며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그렇다고 울면서 부르는 노래도 아니다. 아리랑은 속으로 울면서 겉으로 웃는 노래다. 이런 식의 ‘노래 부르기’는 세계 어느 민족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미국의 블루스가 우리 음악과 닮은 듯, 다른 이유가 여기 있다.
방대한 원작을 압축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자칫하면 치졸한 하이라이트 모음이 되어 버린다. 연출자 고선웅은 대하소설 원작을 작은 통 안에 우겨 넣는 모험을 피하는 대신 과감하게 필요한 부분만 잘라 무대에 올렸다.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김제읍 죽산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7명의 복잡다단한 이야기의 대부분을 포기하고 감골댁의 가족사에 집중했다.
양반출신 독립운동가 송수익(안재욱 분), 송수익 가문의 노비였다가 일제의 앞잡이가 되는 양치성(김우형 분), 감골댁(김성녀 분)의 딸 방수국(윤공주 분)과 수국을 사랑하는 차득보(이창희 분), 송수익을 짝사랑하는 득보의 여동생 옥비(이소연 분), 방수국의 오빠로 빚 20원에 하와이에 역부로 팔려 간 방영근(박시범 분)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킨다.
일본군에게 총살당하는 아버지를 보며 노래를 부르는 옥비, 새까맣게 재가 되어 버린 감골댁 앞에서 넋이 나가는 수국,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영근, “이제 다 포기하고 제 갈 길을 가자”는 독립군들을 독려하며 아리랑을 선창하는 지삼출(최명경 분). 배신자 양치성에게 “우리들은 조선사람 아니냐”며 미소 짓는 송수익. 아리랑에는 잊을 수 없는 인물들과 장면들이 빼곡하다.
감골댁 역을 맡은 김성녀의 신들린 연기는 잊을 수가 없다. 일평생 지킨 집과 함께 불탄 그녀의 뒷모습은 조선인들의 타서 말라버린 속이었을까. 새까맣게 타버린 마음의 잿더미 위에 물 한 방울 떨구는 이소연의 창이 속을 있는 대로 헤집었다. 3시간 내내 울면서 웃었다. 오장육부가 쓰리고 뒤틀리는데 눈과 입은 웃었다. 아리랑은 그런 작품이고, 그런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