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 독도… 반갑구나! 미안하구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0일 03시 00분


[밀레와 함께하는 ‘이야기가 있는 숲 길’]
광복 70주년 맞아 찾아간 국토의 끝 독도

독도를 떠나는 관광객들이 휴대전화로 독도의 모습을 담고 있다. 파도치는 독도에서의 머묾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많은 이가 독도에 도착하기 직전부터 눈물을 흘렸다. 독도=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독도를 떠나는 관광객들이 휴대전화로 독도의 모습을 담고 있다. 파도치는 독도에서의 머묾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많은 이가 독도에 도착하기 직전부터 눈물을 흘렸다. 독도=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밀레와 함께 하는 이야기가 있는 숲길’이 이번엔 섬으로 향했다. 소중한 국토의 끝 독도였다. 아름다운 국토 곳곳을 트레킹하자는 취지에 맞춰 광복절을 앞두고 찾아갔다.

○ 3代가 덕을 쌓아야 밟을 수 있다는 땅 독도

“현재 본선은 독도에 접안 중입니다.”

울릉도 사동항 여객선 터미널을 출발해 독도를 향하던 쾌속선 씨스타 1호에서 반가운 방송이 흘러나왔다. 독도에 입항이 가능하다는 방송이 나오자 승객들이 들썩였다. 마이크를 잡은 승무원도 한껏 신이 났다. 10일 강원 동해시 묵호항을 떠나 울릉도까지 3시간 40분 동안, 울릉도에서 다시 독도까지 1시간 40분 동안 항해한 뒤에 나온 방송이었다. 총 5시간이 넘는 항해 끝에 들려온 소리였다.

독도에 배를 수시로 댈 수 있는 건 아니다. 큰 항구가 아니기 때문에 날씨가 좋지 않거나 파도가 높으면 접안이 어렵다. 관광객들이 이곳까지 왔다가 독도에 내리기 어려우면 독도 주변을 선회하는 관광으로 대체한다. 선박 관계자는 “1년에 독도 땅을 밟을 수 있는 날은 60일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 이날 오전에 출발했던 쾌속선도 파도가 높아 독도에 접안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다 돌아왔다.

“3대가 덕을 쌓아야 갈 수 있는 땅이 독도입니다. 여러분은 복을 많이 쌓으신 분들이에요.”

배가 독도에 정박하려 속도를 줄이자 씨스타 1호 매점에서 일하고 있는 승무원인 이윤우 씨(59)가 목소리를 높인다.

독도에 도착한 관광객들이 태극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날씨 등의 변수 때문에 언제나 독도에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독도에 내리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 독도=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독도에 도착한 관광객들이 태극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날씨 등의 변수 때문에 언제나 독도에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독도에 내리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 독도=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아웃도어 업체 밀레가 25∼35세 연령의 고객을 위해 만든 브랜드 엠리밋(대표 한철호)은 7월 10일부터 26일까지 이벤트 추첨을 통해 30여 명의 독도 방문 고객을 선정했다. 이들은 10일과 11일, 1박 2일 일정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찾았다.

독도를 방문하는 승객들에게 이 씨는 유명 인사다. 과자와 음료수를 팔다가도 수시로 승객 자리로 나와 마이크 없이 독도의 역사를 설명한다.

이 씨는 독도가 좋고 울릉도가 사랑스러워 무작정 울릉도와 독도를 오가는 배를 탔다고 했다. 이 씨는 유명 자동차 회사에서 자재과 대리로 근무하다 1998년 외환위기 때 회사를 나왔다. 이후 서울역에서 7년간 무료 급식 봉사를 했다. 다시 직업을 얻어 경기 안산 시화공단에서 근무하던 중 선박회사 회장 자녀와 친구 사이인 조카의 소개로 독도를 오가는 배에서 일하게 됐다.

“매일 독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습니다. 독도는 제 인생의 희망이에요.”

그는 매일 독도 일기를 쓴다. 독도의 날씨, 경관, 배에서 독도 얘기를 함께 나누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다. 배가 독도에 이르자 이 씨는 어김없이 일기를 쓰는 노트를 꺼냈다.

“오늘은 10페이지 이상 일기를 쓸 것 같네요. 손이 바쁠 듯합니다. 하하.”

독도에 접안을 시도하는 배 안에서 기자와 승객들의 눈에 눈물이 자꾸 흘렀다. 우리나라 땅을 밟는데 눈물이 나는 건 처음이다. 가수 홍경민이 부른 ‘내 나라 내 겨레’라는 노래가 배 안에 울려퍼지니 감정이 더 울컥한다. 독도에 배가 들어올 때에 맞춰 독도경비대 대원들이 마중 나와 승객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배가 완전히 정박할 때까지 경비대원들은 이마에 갖다 댄 손을 내려놓지 않았다. 얼마나 고생하고 있을까, 대원 한 사람 한 사람 군복 왼쪽 가슴에 새겨진 이름이 눈에 아련하게 들어왔다. 또다시 승객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파도가 점점 세지고 있으니 20분간만 정박하겠습니다.”

독도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330t급 여객선이 두 개의 로프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어 오래 정박할 수 없다. 1분 1초가 소중한 곳이 독도다. 한 컷이라도 더 사진에 담으려고 승객들은 분주했다.

전북 전주에 사는 예비 신혼 부부 심제인(34), 이세진 씨(31)는 “평소 독도라는 곳을 가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해 봤는데, 이렇게 직접 독도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어 영광이다”라며 “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독도경비대원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심 씨는 “군복무 시절처럼 애국심이 생기고 굳건해지는 것 같다”며 “자녀가 생기면 꼭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정승숙(52), 정주혜 씨(44) 자매는 “독도에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 가슴이 벅찼는데 독도경비대원들이 맞이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다. 독도를 많은 사람이 방문할수록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파도가 거세지기 시작했기에 독도에 머무르는 시간은 더 짧아졌다. 탑승 출구에서 파도를 지켜보고 있던 승무원들이 빨리 타라고 탑승을 재촉했다.

이때 독도경비대 정현빈, 장대청 수경은 15일 전역을 앞두고 후임병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독도경비대원들 중 전역자가 있을 경우에는 독도에 배가 늘 드나들 수 없기 때문에 날씨가 좋은 날 울릉도 부대로 미리 나가 전역을 기다린다. 동료들이 전역을 앞둔 두 사람을 높이 헹가래쳤다. 두 대원은 울릉도로 향하는 배에 탑승하기 전 21개월간 동고동락했던 독도의 공기와 입을 맞추듯 눈을 감았다. 떠나는 배 창문을 사이에 두고 후임병들과 눈물의 경례를 나눴다. 정현빈, 장대청 수경은 한동안 배 안의 자리에 앉지 못했다. 정현빈 수경은 “독도 와서 울어 본 적이 없는데 막상 떠나자니 눈물이 많이 난다. 독도에서 병역 의무를 마쳤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고향이 광주지만 항상 독도를 마음속의 고향으로 삼고 싶다”라고 말했다.


○ 3무(無) 5(多)의 섬 울릉도


독도에서 울릉도로 돌아왔다. 울릉도는 소중한 독도를 품에 안고 있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직선으로 87.4km 거리다. 일본이 시도 때도 없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마당에 울릉도는 더욱 든든한 독도의 ‘어미 섬(母島)’처럼 여겨진다.

면적 72.56km²의 울릉도에는 3가지가 없다.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해 섬 지도를 보니 우선 공장이 없다. 그래서 공해가 없다고 한다. 울릉도는 화산 폭발로 생긴 돌섬이다. 돌산이 많다. 뱀이 없다. 도동항에 내려 숙소로 이르는 길에 보이는 주택들은 문이 죄다 열려 있다. 넌지시 주민에게 물으니 “육지로 나가기 쉽지 않으니 집을 털어 갈 도둑이 있을 리가 없다”고 귀띔했다.

울릉도에는 평지가 거의 없고 해안은 대부분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56.5km에 이르는 해안선은 가지각색 바위들로 볼거리를 자랑한다. 사동항에서 북쪽으로 따라가는 해안선은 대표적인 관광 코스다. 사람이나 동물 등의 형상을 한 바위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문어바위와 어미를 찾는 새끼 거북이 대롱대롱 매달린 것처럼 보이는 바위가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이어 인디언 추장 바위, 사자바위가 바다와 어우러져 쉴 새 없이 눈을 즐겁게 만든다.

해안선을 따라가는 도로는 좁다. 절벽에서 돌이 떨어져 사람이 다치거나 도로가 유실되는 사고가 빈번하다. 통구미터널과 남통터널은 절벽과 바다까지 거리가 유난히 가깝고 도로가 좁다. 왕복 1차로 도로다. 그래서 오고가는 차들의 충돌 사고를 막기 위해 신호등이 설치돼 있다. 울릉도 전체에 신호등이 2개 있는데 바로 여기에 있다.

돌과 바람, 물, 향나무, 미인이 많다고 해서 5다(多)의 섬으로 불린다. 특히 미인이 많다는 건 울릉도의 물이 미끈하기 때문이라는 속설이 있다. 울릉도 인구는 9000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여성 비율은 그리 높지는 않다고 한다.

대하등대를 거쳐 마을로 진입하면 섬에서는 흔치 않은 두 곳의 중국집을 만날 수 있다. 울릉도에서 드물게 배달이 되는 음식점이다. 울릉도에도 최근 피자 가게가 들어섰다. 그러나 울릉도로 여행을 온다면 햄버거를 맛볼 수 없다. 울릉도에는 햄버거를 파는 가게가 없다. 그래서 울릉도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선물이 햄버거라고 한다.

평리 마을에서 가수 이장희 씨의 작업실과 ‘울릉천국’이라고 불리는 자택을 보고 닭다리바위와 수심 7m에서 바다 경관을 볼 수 있는 해중 전망대를 지나면 울릉도 여행의 백미인 나리분지를 접하게 된다. 화산 분화구에 화산재가 쌓여서 생긴 울릉도의 유일한 평야지대다.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논농사가 가능한 곳이다. 조선 고종 때부터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나는 섬말나리 뿌리를 먹고 연명해 왔다고 해서 ‘나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주민들이 직접 심어서 파는 옥수수를 맛보면 찰기가 예사롭지 않다.

오랜 항해 끝에 내린 울릉도의 촉감이 좋았다. 거친 돌산이지만 그 풍경에 설레었다. 막상 울릉도에 내려 오랜만에 몸이 다른 세상에 온 듯 반응했다. 바위산 울릉도의 절경은 눈을 감을 수 없게 만들었다.

“가슴 찡한 여정이었다. 이렇게 큰 울림을 안고 여행한 적이 없었다. 울릉도와 독도를 경험하게 되어 감사하다.”

울릉도와 독도를 떠나 다시 돌아오는 길에 충주에서 왔다는 이충식 씨(47)가 말했다. 뒤에 남긴 섬들을 바라보며 많은 이가 비슷한 상념에 잠겼다.

東亞日報와 밀레가 함께하는 열두 길 트레킹

독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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