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보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서울 혜화동 대학로의 낯익은 풍경 하나. 일명 ‘삐끼’로 불리는 전문 호객꾼이 손님을 끄는 광경이다. 이들 중 일부는 ‘표가 매진됐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른 티켓을 파는가 하면 값을 부풀리기도 한다. 보다 못한 연극인들이 지난해 거리로 나서 ‘맞불 홍보’를 하기도 했다.
‘삐끼.’ 물건 등을 팔기 위해 손님을 부르는 호객꾼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삐끼는 끌어당긴다는 뜻의 일본어 ‘히쿠’의 명사형 ‘히키’를 강하게 발음하면서 생긴 말로 보인다. 삐끼는 속된 말이니 삐끼들로선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손님을 가게에 소개하고 그 대가로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도 많을 테니 말이다.
삐끼를 대신할 말은 없을까. 좋은 우리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여리꾼’이다. 여리꾼은 상점 앞에 늘어서서 손님을 기다린다는 뜻의 ‘열립군(列立軍)’에서 유래했다. 열립이 ‘여리’로 변하고 거기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꾼’이 붙었다. 여리꾼이 손님을 가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여립켜다’라고 한다.
조선시대에 육주비전의 상인들은 아들에게 문서를 볼 정도의 글자와 상인들끼리만 통용되는 변말을 배우게 한 다음 열다섯 살 무렵에 다른 가게의 심부름꾼으로 보냈다. 일종의 상인 수업이다. 스무 살 정도에 상인이 될 자질을 보이면 따로 가게를 내어 독립을 시켰지만 그렇지 못하면 ‘여리꾼’으로 썼다고 한다.
말의 생명력은 언중의 입길에서 나오지만 명심할 게 있다. 상대를 비하하거나 불쾌하게 만드는 말은 생명력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거짓말’과 ‘이야기’를 속되게 이르는 ‘구라’나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맡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따까리’가 순우리말임에도 입길에서 멀어진 것도 그런 연유다.
아 참, ‘흥정을 붙여주고 보수를 받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주릅’이라는 게 있다. 약재 매매를 중개하는 사람은 약주릅, 집 흥정을 붙이는 사람은 집주릅이다. 요즘의 공인중개사가 집주릅인 셈이다. 두 단어 모두 사전에 올라 있다. 복덕방에 해당하는 ‘집주름방’도 사전에 올라있는데 북한에서 쓰는 표현이다. 북한에서는 ‘주릅’이 ‘주름’으로 바뀐 듯하다.
여리꾼,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불편한 삐끼 대신에 쓸 말로 손색이 없다. 뜻도 분명하고 말맛도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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