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은 수필가로 유명하다. 그의 수필집 제목은 ‘인연’인데, 이 책은 수필계의 고전이자 스테디셀러로 알려져 있다. 왜 그렇게 많이들 읽었을까. 피천득의 수필집에는 가난하지만 유복할 수 있는 비밀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 비밀이란 것이 대단히 거창하지도 않다. 요약하자면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대하는 자세가, 피천득이 강조하는 삶의 비밀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기 참 쉽지 않다. 쉽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피천득의 수필집은 계속 읽힐 것이다.
수필가일 뿐이랴. 수필집을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데, 피천득은 선구적으로 딸 바보 아빠였으며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여기 ‘꽃씨와 도둑’은 시인 피천득의 재능을 알게 해주는 작품이다. 그런데 오늘의 소득은 수필가 피천득이 시인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이 아니다. 수필에서 만난 비밀을 시에서도, 이렇게 다른 듯 같게 읽게 된다는 부분에 방점을 찍자.
자, 시에는 우선 ‘마당’이 있는 집이 있다. 마당에는 아름다운 ‘꽃’이 가득하다. ‘마당’과 ‘꽃’은 고즈넉한 분위기, 마루에 앉아 보내는 한가로운 시간을 암시해준다. 이제 눈을 돌려 방 안을 보자. 방 안에는 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책들만’ 있다. 책이 있는 방과 ‘책들만’ 있는 방은 몹시 다르다. ‘책들만’ 있다는 말은, 이 집의 주인이 책만 읽으며 살아왔다는 점을 암시한다. 집의 주인은 시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집과 주인은 책과 동행하는 행복한 고독을 알고 있다. 그는 다시 꽃을 바라본다. 곧 씨앗을 받을 계절이 올 것이다. 그때 다시 와서 꽃씨를 받겠다고 다짐한다. 아주 단순한 구조이지만, 이 시는 마당과 책이 있는 삶을 배경에 깔고 있다. 더없이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여기 돈 냄새 따위는 전혀 없다. 그리고 이런 책과 꽃의 세계는 우리와 매우 멀다. 먼 것을 시가 왜 모를까. 아주 멀기에 ‘가깝고 싶다’고 시가 말한다. 더불어, 시를 읽으며 우리의 마음도 ‘가깝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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