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문학 작가들이 로맨스소설을 썼다. 작가들이 선보인 로맨스엔 감성적인 연애도 있고 SF풍 사랑 이야기도 있다. 로맨스소설 시리즈 ‘로망컬렉션’에 참가한 작가들. 왼쪽부터 하창수 한차현 박정윤 김서진 전아리 씨. 나무옆의자 제공
《 ‘순문학 작가들이 할리퀸을 쓴다?’ 남녀의 사랑을 소재로 삼는 로맨스소설은 1980년대 하이틴로맨스, 1990년대 할리퀸로맨스 등의 번역판 시리즈물이 국내에 소개돼 인기를 모았다.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본격문학에선 외면받았던 게 현실이다. 24일 출간된 ‘로망컬렉션’(나무옆의자)은 ‘고품격 로맨스소설’을 내세웠다. 그런데 작가의 면면이 흥미롭다. ‘봄을 잃다’의 하창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요란하다’의 한차현, ‘연애독본’의 박정윤, ‘네이처 보이’의 김서진, ‘미인도’의 전아리 씨…. 문예지나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문단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이다. ‘한국판 할리퀸’을 순문학 작가들이 쓴 셈이다. 》
출판사 측은 작가들에게 로맨스소설은 일절 참고하지 말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로맨스소설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소설은 연륜 있는 사랑도 있고 풋풋한 사랑도 있다. 작가들의 연령은 20대부터 50대까지, 내용도 감성적 연애부터 판타지 작품까지 다양하다. 하창수 씨의 ‘봄을 잃다’는 이혼 경력이 있는 40대 사진작가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20대 동거녀를 찾아 나서는 20시간 동안의 이야기다. 한차현 씨의 ‘우리의 밤은…’은 35세 주인공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성 N이 알고 보니 미래에서 왔다는 내용이다. 김서진 씨도 ‘네이처 보이’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여성이 마법사를 자처하는 남자를 만난 뒤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일들을 그린다. ‘연애독본’은 1930년대 세 여학생이 첫 순정을 버리는 경험기를 담은 소설이다. 남녀 모두 공감할 만한 사랑 이야기가 주요 테마인 데다 만만찮은 ‘수위’도 눈에 띈다.
로맨스소설 시리즈 ‘로망컬렉션’. 나무옆의자 제공순문학 작가들의 작품답게 흥미 요소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가볍지 않은 주제 의식도 담았다. 한차현 씨는 “우선 소재 측면에서 SF적 요소를 가미해 기존 로맨스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며 “무엇보다 소설을 통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과연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건지, 상대에게 비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건지에 대한 고민을 던졌다”고 말했다.
춘화를 소재로 삼은 ‘미인도’를 쓴 전아리 씨는 “로맨스소설 하면 ‘싼 소설’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사랑은 인간 누구나 공감하는 원초적 감성”이라며 “연애 감정뿐 아니라 그 아래에 놓인 인간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소설로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본격문학의 경계가 허물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한국 문학의 지평이 확장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학평론가 박철화 씨는 “영상물의 위력이 커지고 텍스트의 영역이 좁아지는 시대를 맞아 순문학도 다른 대중적 장르들과 만나면서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본격문학 작가들이 ‘고고한 성채’에 갇혀 있지 않고 독자들과의 접점을 찾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괴테, 셰익스피어 등 위대한 거장들의 사랑 이야기도 오래 읽혀온 만큼 로맨스라는 장르가 독자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신승철 나무옆의자 주간은 “로맨스소설 하면 10대와 20대들이 보는 인터넷소설을 떠올리는데, 말초적이고 필요 이상의 우연성이 남발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와는 다른 수준 있는 연애소설을 선보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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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5 07:43:37
순문학? 본격문학? 전통적(?)인 대중뮨학 또는 말도 안 되는 이름인 '장르문학'과 구별하려는 것이겠지만 이같은 분류는 지구상에서 아마도 한국과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닐까. 그리고 '고품격 로맨스 소설'이라고? 웃기는 얘기다. 자기네가 쓰면 고품격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