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스터 거리를 걷다가 지치면 벤치 한구석에 앉아 트라클의 시를 읽다가 문득 삶이란 어떤 순간에도 낯설고 무시무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리.”
독일에 거주하는 시인 허수경 씨(51)가 최근 출간한 에세이 ‘너 없이 걸었다’(난다)의 한 대목이다.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와 ‘혼자 가는 먼 집’에서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한국 시단에 충격을 던진 그가 돌연 고고학 공부를 하겠다며 독일로 떠난 지 23년째다. 그는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독일 뮌스터에서 체류하며 모국에 시를 보내고 시집을 묶어 왔다.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재독(在獨) 시인’이 놓였지만 독일에 대해 그가 직접 얘기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 도시에서 나는 혼자 걸어다니는 이방인이었다. (…) 걷다가 걷다가 마침내 익숙해질 때까지 살아낼 수밖에는 아무 도리가 없었다.” 스스로 ‘몸 없는 유령’ 같았다던 그는 독일 시인들의 시를 읊으면서 도시와 동화됐다. 시인은 에세이에서 하이네, 괴테, 릴케 같은 잘 알려진 시인부터 아이징거, 호프만슈탈, 그베르다 등 낯선 독일 시인의 시를 직접 번역해 실으면서 독일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소개했다.
가령 시인은 뮌스터 시내 성 람베르티아 성당에서 일어난 두 번의 참변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번째 참변은 1530년대 이곳을 둘러싸고 가톨릭과 반(反)가톨릭 세력이 쫓고 쫓기는 싸움을 한 것이고, 두 번째 참변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이 독일을 폭격했을 때였다. 성당의 첨탑이 무너졌고 지붕은 불에 탔으며 기둥들은 교회 안으로 무너져 내렸다. 독일 작은 도시의 성당 한 곳에도 이렇게 독일과 유럽의 역사가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이국의 거리를 걸으면서 얻은 인간에 대한 그의 성찰이 돋보인다. “그걸 알게 되었다. 독일어로 쓰인 시를 읽으며 걸었던 거리에서. 인간은 어디에 있든 얼마나 작고도 하잘것없으며 그러나 얼마나 특별한 개인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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