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 홍서봉(洪瑞鳳)의 어머니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거친 밥이나 나물국조차도 거를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종을 보내 고기를 사 오게 하였는데 고기의 빛깔을 보니 상한 듯하였다.
끼니조차 자주 거르던 집에서 모처럼 고기를 사 왔습니다. 생일이거나 제사였거나 특별한 날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고기가 상하였다니 어이없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겠지요. 그래서 부인은 어떻게 했을까요?
부인은 여종에게 “팔고 있는 고기가 몇 덩이쯤 있더냐?” 묻더니, 머리 장식을 팔아 돈을 마련해서 여종에게 그 고기를 모두 사 오도록 하여 담장 밑에 묻어버렸다.
어어? 이게 뭔가요? 고기 잘못 사 온 여종을 혼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한 고기 판 사람에게 가서 따지거나 그를 고발한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얼마 안 되는 패물까지 팔아서 남아 있는 고기를 몽땅 사 오게 하더니, 그걸 또 담장 밑에 묻어버립니다. 우리네 평범한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기요, 어머니,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건데요?
다른 사람이 사서 먹고 병이 날까 두려워서였다(恐他人之買食生病也).
갑자기 말문이 탁 막힙니다. 한 대 맞은 듯 띵하면서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닙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게 최선일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떡여지기도 합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의견이 나오겠지만 어쨌든 이 이야기의 핵심은 ‘배려’일 것입니다. 여종에 대한, 고기 파는 사람에 대한, 혹시 모르고 사다 먹을 낯모르는 이웃들에 대한 배려. 나보다 조금 못 배웠거나 좀 더 어려운 이웃에 대해 갖는 넉넉한 마음. 이런 점을 높이 평가했기에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이라는 책에서 선행(善行)의 사례로 뽑아 실은 게 아니겠습니까?
아들 홍서봉은 이 일을 알고 “어머니의 이런 마음씨는 하늘이 감동할 만하니 자손들이 반드시 번창할 것입니다(母氏此心, 可通神明, 子孫必昌)” 하였답니다. 역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인가 봅니다. 음식 상하기 쉬운 계절에, 음식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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