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리듬 위에 안개 자욱한 목소리를 얹어 사랑과 위로를 노래해 온 웅산. 세월이 갈수록 자연을 닮아가는 웅산의 노래에는 강력한 치유의 힘이 담겨 있다. 사진제공|포니캐년코리아
■ 여덟번째 앨범 낸 재즈디바 웅산
새 앨범 ‘템테이션’은 펑키 스타일 오디오 마니아 요청에 첫 LP 제작 타이틀곡 ‘유 허트 미’는 자작곡 나쁜 남자 떠올리며 썼어요
“오랜 만이에요, 기자님!”
카페 문을 열고 웅산(재즈보컬리스트)이 성큼성큼 걸어 다가오더니 두 손을 내밀었다. 손을 맞잡고 친근감을 표현하는 ‘웅산식 두 손 악수’를 나누었다. 웅산은 최근 여덟 번째 정규앨범 ‘템테이션(Temptation)’을 냈다. 유혹이란 뜻이다. 누구를 유혹하고 싶었던 걸까.
“뭐, 웅산의 새로운 음악으로의 유혹이라는 의미랄까요?”
기대했던 답변은 아니다. 뚱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으니 웅산이 웃었다.
“저 최근 6∼7년은 (사귀는 사람) 없거든요?”
웅산은 한류 재즈보컬리스트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공연, 공연, 공연하다보면 1년이 간다. 재즈보컬리스트라고는 하지만 웅산은 재즈의 이웃사촌쯤 되는 장르인 블루스에도 능통하다. 대학시절에는 록 밴드의 보컬이었다. 이런 다양한 음악적 경험이 지금까지의 앨범에 초콜릿처럼 녹아 배어있다. 이번 앨범은 펑키다. 어깨를 들썩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곡들이 대거 수록됐다.
“비정규 앨범까지 포함하면 이번이 11번째 앨범이다. 앞으로 뭔가 완전히 새로운 웅산의 음악이 나오게 될 것이라는 암시와도 같은 앨범이라고나 할까.”
웅산은 어쿠스틱에서 일렉트로닉, 스무스 재즈로 변화해 왔다. 다음 앨범은 어떤 모습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해 온 어쿠스틱은 아닐 것이라 했다.
‘템테이션’에는 리 릿나워, 나단 이스트, 존 비즐리, 멜빈 데이비스 등 재즈팬이 아니더라도 귀에 익숙한 거물들이 대거 참여했다. 재즈 기타계의 거장 리 릿나워와는 지난해 연말 세종문화회관에서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 웅산은 “이 분들은 어릴 적 나의 아이돌들이었다”고 했다.
“꿈같은 일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뀌고 나니 이 분들과 앨범을 만들고, 녹음을 하고 무대에서 협연을 하게 됐다. 작년에 세종문화회관 무대에서 노래를 하다 문득 옆을 보니 리 릿나워가 기타 연주를 하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리 릿나워가 나를 위해 연주를 해 주다니!”
웅산은 음악 못지않게 ‘소리’에도 정성을 기울이는 아티스트로 유명하다. 이번 앨범도 일반 CD 외에 별도로 UHQCD라는 고음질 CD를 만들었다. 그동안 웅산의 앨범은 일본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일본에서 웅산의 앨범은 재즈팬 외에 오디오 마니아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이들의 끊임없는 요청에 힘입어 ‘템테이션’은 처음으로 LP로도 나온다.
2014년 12월 세종문화회관에서 리 릿나워(왼쪽)와 한 무대에 선 웅산. ● “난 화도 낼 줄 아는 여자”
웅산의 앨범을 초창기 것부터 차례로 듣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갈수록 노래의 화장기가 옅어진다. 소리에서 기름기가 차츰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점점 담백해져 간다. 이 말에 웅산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내가 추구하는 음악은 자연스럽고 또 자연스러운 음악이다. 사실 늘 똑같이 하고 있는 건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 가나 보다. 음악과 내가 하나가 되어간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렇게 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템테이션’의 타이틀곡인 ‘유 허트 미(You hurt me)’는 웅산이 작곡하고 가사를 썼다. “누가 그렇게 괴롭혔냐”고 물으니 웃었다.
“어차피 자작곡은 자서전이다. 이전 앨범 타이틀곡이었던 ‘예스터데이’, ‘투모로우’처럼 사랑만 하는 게 아니라 화도 낼 수 있는 여자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 이야기는 아니고. 옛날을 떠올리면서, 나쁜 남자 이야기를 썼다.(웃음)”
웅산은 산을 좋아한다. 알려져 있듯 ‘웅산’은 비구니 시절의 법명이다. 그래서일까. 웅산의 음악은 세월이 갈수록 산을 닮아간다.
멀찌감치 떨어져 보아도 좋고, 속으로 들어가도 좋다. 깊이 들어갈수록 웅산이란 삼림이 짙어지고 무성해진다. 실은 들어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웅산의 여덟 번째 ‘유혹’이 참으로 달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