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장을 마치고 중국 상하이로 돌아가는 후배를 김포공항에 내려주었다. 오후 7시 10분 비행기로 출국하는 걸 배웅하고 공항을 나오려니 귀가하기엔 너무 이른 초저녁이어서 근처 영화관에 들어갔다. 마침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영화 ‘암살’의 상영시간이 7시였다.
방금 상하이로 떠나는 후배를 배웅했는데 영화 또한 1933년의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삼고 있어 더 흥미로웠다. 사람마다 영화를 감상하고 기억하는 방법은 다를 터인데 나는 가슴에 닿는 인상적인 대사로 그 영화를 압축하는 버릇이 있다. ‘암살’이란 영화에서도 명대사가 여러 번 나왔는데 이상하게 내 가슴에 꽂힌 대사는 정말 평범한 한마디였다.
“우릴 잊지 말아요.”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의 그림자인 영감(오달수)이 마지막 이별임을 예상했는지 안옥윤(전지현)과 헤어지며 하는 말이다. 그 말이 슬퍼서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감정을 다스려야 했던 이유는 그 말이야말로 풍찬노숙하며 목숨까지 바친 독립투사들이 지금 우리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잊지 말라는 말을 넘어서서 망국의 역사를 기억하라는 그 말, “우릴 잊지 말아요!” 그런데 실은 잊고 살았기에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잊힌다는 것이 아닐까. 아마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도 죽음으로써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끝내 잊힌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배경도 멋지고 의상도 낭만적이지만 상하이임시정부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내가 본 빛바랜 사진 속 독립운동가들의 행색은 눈물겹도록 초라하고 허술했다. 그러나 열악한 조건에 승산 없는 싸움일지라도 “우리가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기꺼이 목숨까지 내놓은 그분들을 우린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상해에 잘 도착했어요.”
내가 1933년의 상하이에 빠져 있는 동안 후배는 어느새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80년 전에는 머나먼 땅이었을 상하이가 지금은 영화 한 편 보는 동안에 도착하는 곳이 되었다. 그렇게 빠르고 엄청나게 세상이 변하는 속에서 우리 민족의 처절하고 참담했던 그날도 영화를 통해 상기해보는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광복 70주년이라고 떠들썩했던 8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뜨겁던 8월이 가기 전에 역사를 잊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만은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역사는 계속 반복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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