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의 후수 연결이 불가피해서 초중반 이어진 백의 우세는 어느덧 눈 녹듯 사라졌다. 흑 153이 반상에서 가장 큰 곳. 이젠 흑이 좀 낫지 않나 싶다.
박영훈 9단의 마음속에선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힘겨운 레이스였지만 드디어 백을 따라잡았다. 더구나 흑 153은 선수 아닌가. 백이 손을 빼면 우하 백은 전멸이다.
그런데 이창호 9단이 백 154로 좌변 패부터 건드린다. 이를 본 박 9단은 깜짝 놀랐다. 우하 백이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이 9단이 왜 가일수를 하지 않고 좌변부터 뒀을까. 이리저리 수읽기를 해봐도 백이 사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박 9단은 흑 155로 두며 바둑이 끝났다고 자신했다.
뚝심 있게 흑 159까지 죽죽 이어가면 백이 살아갈 길이 없지 않나.
하지만 박 9단은 곧 착각을 깨달았다. 백 160이 있었다. 이 9단은 일찌감치 이 수를 보고 있었기에 느긋했던 것.
백은 164까지 선수한 뒤에 백 168, 170으로 이어갔다.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교묘한 수순. 참고도와 실전을 비교하면 흑이 얼마나 손해인지 금방 눈에 띈다.
더구나 좌변 패에서 흑은 팻감 부족으로 후수를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 순식간에 재역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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