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말에 경기 남양주 푸드카로 대학 동아리 친구들을 불러 모임을 치른 적이 있다. 모처럼의 모임에 음식이 빠질 수는 없지. 그들이 평소엔 접하기 힘든, 그러면서 뭔가 모임의 분위기를 파티처럼 왁자지껄 흥이 나게 할 특별한 요리가 없을까. 한 번의 조리로 7, 8명이 먹을 정도가 되는 요리. 아, 있다. 오리 오븐 구이. 영어 그대로 옮기면 좀 더 특별한 느낌이 난다. 로스트 덕.
상당수의 한국 가정집 주방에 있지만 좀처럼 쓰이지 않는 조리기구가 있다면, 그건 오븐이다. 어머니도 부엌 가스레인지 아래를 차지하고 있는 오븐을 오랫동안 주방 도구의 수납함으로만 사용하고 있어, 집에 들러 오븐으로 뭔가 요리를 한다고 하면 어머니는 “아이고야”를 연발하며 한바탕 오븐부터 비워내는 수고를 덤으로 하신다.
열전도율이 낮은 공기를 가스불이나 전기로 데워 서서히 조리하는 오븐 조리법은 대표적인 ‘슬로 쿠킹’ 조리법이다. 불을 직접 사용하는 것에 비해 뜨거운 공기로 익히기 때문에 식재료에 균일하게 열을 전달할 수 있고 물에 삶거나 끓여서는 얻을 수 없는 식재료 표면의 바삭함과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노릇노릇한 색깔도 얻을 수 있다. 또 수분을 상당 부분 날리면서 조리하기 때문에 식재료 고유의 맛이 한층 진해진다고 할까.
이렇듯 매력적인 조리법이지만 한국인에게 익숙한 조리법이 아니고 또 대다수 한국인의 일상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지라 시도할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그러니 오븐 요리가 좀 더 확대되려면 우리의 일상부터 좀 여유로워져야 하지 않을까.
서두가 길었다. 일단 로스트 덕 요리의 메인을 장식할 오리 한 마리. 보통은 닭으로 하지만 입이 많은지라 무게가 2kg이 넘는 오리로 준비했다. 그래도 오리 한 마리로 8명이 먹기엔 부족할 테니 오리와 함께 구워 배를 적당히 채울 다른 식재료가 필요하다. 당근, 감자, 양파, 단호박. 오븐에 구우면 다 맛있다. 요즘이라면 빛깔 좋은 가지나 옥수수, 통마늘도 좋겠다. 이것들로 오븐 트레이의 바닥 부분을 채우고 올리브기름을 조금 뿌린다.
냉장 상태의 오리는 오븐에 넣기 전에 미리 밖에 꺼내두어 실온 상태가 되어야 안팎으로 알맞게 익는다. 표면에 올리브기름을 얇게 바르고 소금과 후추를 적당히 뿌려둔다.
전통적인 방식으론 닭이나 오리를 등 부분이 바닥에 닿게 통째로 조리하지만 이 방법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콜라겐이 풍부한 다리 부위는 섭씨 76도 부근에서 가장 맛있는데 이때 가슴 부위는 촉촉함을 유지하면서 알맞게 익는 섭씨 65도의 온도를 훌쩍 지나쳐 고기 육즙이 말라 퍽퍽해진다. 등을 갈라 가슴 부위가 트레이의 가운데 오도록 바닥에 펼치는 ‘버터플라이’ 모양으로 두면 두 부위의 온도를 비슷하게 맞출 수 있다. 오븐 트레이의 가장자리가 좀 더 열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이제 섭씨 250도로 예열해놓은 오븐에 넣고 1시간가량 익히면 된다. 오리나 닭의 크기와 오븐의 성능에 따라 익는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막바지에 꺼내 확인해보면 더 확실하다. 2.4kg 무게의 오리는 1시간 10분 정도가 걸렸다. 겉이 너무 빠르게 노릇해진다고 판단되면 온도를 230도 정도로 낮춘다.
남은 것은 그레이비소스. 오리를 다 구운 뒤 트레이 바닥에 말라붙은 육즙과 야채 부스러기를 이용할 수도 있고 아니면 처음에 오리 등을 가를 때 척추 뼈를 도려내 뜨거운 팬에 당근, 양파 등과 함께 지지고 볶은 뒤 와인을 조금 부어 바닥을 훑어내고 물을 부어 졸인 뒤 체로 거르고 버터와 밀가루, 레몬즙을 첨가하고 소금과 후추로 간하여 완성할 수도 있다.
오븐 요리는 시간 활용도 여유롭다. 준비 과정이 조금 번거로울 뿐 조리할 대상을 오븐 안에 밀어 넣는 순간 이제 커피를 한 잔 내려 홀짝이면서 여유롭게 기다리는 시간만 남았다. 부엌 한구석에선 식욕을 돋우는 냄새를 폴폴 풍기며 음식이 익어가고 나는 손님들이 언제 오나 그 만남의 설렘을 오랫동안 오롯이 음미할 수 있어 좋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필자(44)는 싱가포르 요리학교 샤텍 유학 뒤 그곳 리츠칼턴호텔에서 일했다. 그전 14년간 동아일보 기자였다. 경기 남양주에서 푸드카 ‘쏠트앤페퍼’를 운영 중이다. 김성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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