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의 랩, 조심스레 세상을 흔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9일 03시 00분


래퍼 이센스 1집 ‘The Anecdote’… 발매 첫 주만에 1만6000장 불티

국내 최초로 ‘옥중 앨범’을 낸 래퍼 이센스. 전문가들은 “투옥을 포함해 거친 삶을 산 래퍼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힙합계 일각에 있지만 그것이 음반 판매와 직결되진않는다. 이센스 신드롬은 음악의 완성도 등의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바나 제공
국내 최초로 ‘옥중 앨범’을 낸 래퍼 이센스. 전문가들은 “투옥을 포함해 거친 삶을 산 래퍼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힙합계 일각에 있지만 그것이 음반 판매와 직결되진않는다. 이센스 신드롬은 음악의 완성도 등의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바나 제공
국내 최초의 ‘옥중 앨범’이 발매됐다. 그것도 이례적인 찬사와 인기와 함께. 그리고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앨범 발매 가수는 래퍼 이센스(E SENS·본명 강민호·28). 그는 대마초 흡연 혐의로 7월에 1심에서 1년 6개월 형을 받고 서울남부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다. 2011년에 같은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은 뒤 재범을 해 실형을 받았다.

국내 최초의 옥중 앨범인 래퍼 이센스의 새 음반 ‘The Anecdote’(일화)의 표지. 단순한 배경에 이센스의 본명인 강민호의 영어 이니셜을 새겼다. 바나 제공
국내 최초의 옥중 앨범인 래퍼 이센스의 새 음반 ‘The Anecdote’(일화)의 표지. 단순한 배경에 이센스의 본명인 강민호의 영어 이니셜을 새겼다. 바나 제공
이센스 1집 ‘The Anecdote’(일화)는 지난달 27일 나왔다. 발매 첫 주에만 1만6000장 이상 팔렸다. 8일 현재 1만8000장 가까운 판매량을 올리고 있다. 강일권 웹진 ‘리드머’ 편집장은 “인디 힙합 앨범이 첫 주에 1만 장 넘게 팔리는 건 미국에서조차 드문 일”이라며 “대단한 기록”이라고 했다.

주류 음악 시장에서도 약진했다. ‘The Anecdote’는 최근 가온차트 앨범 차트(8월 23∼29일)에서 2위에 올랐다. 같은 주에 이센스보다 CD를 더 많이 판 가수는 소녀시대(‘Lion Heart’)뿐이다. 아이돌 가수인 빅스LR, B1A4, 현아, 갓세븐, 슈퍼주니어, 빅뱅(3∼10위)도 넘어섰다. 음원서비스 ‘지니’에서는 앨범 수록곡 ‘The Anecdote’가 9월 첫 주(8월 27일∼9월 2일) 실시간 누적차트 9위다. 10위권에서 무한도전 가요제, 쇼미더머니4 등 TV 프로그램과 관련 없는 건 이 곡뿐이다.

그간 연예인이나 가수는 도박, 음주운전, 약물 복용, 성추행 같은 범죄와 연루되는 순간 자숙 기간에 돌입했다. 국민정서 때문이다.

이센스 돌풍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음악이 뛰어나다. 힙합이란 장르의 거침없는 특성도 얼마간 작용했을 것이다. 또 처벌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는 대마 흡연을 도박이나 음주운전에 비해 죄질이 약하다고 보는 듯하다”고 했다.

이센스는 활동을 시작한 2006년부터 ‘괴물 래퍼’로 불렸지만 솔로 앨범은 없었다.

강일권 편집장은 “힙합 팬들 사이에 그가 재범으로 수감된 데 대해 실망과 원망의 목소리도 높았다”며 “하지만 그의 첫 앨범은 무조건 명반이 될 거란 힙합 팬들의 신뢰가 강했고 실제 완성도가 높다”고 말했다. 평단 일각은 이 음반을 일찌감치 ‘올해의 앨범’의 유력한 후보로 꼽는다.

‘The Anecdote’는 이센스가 대마초 흡연 혐의로 수사를 받기 시작한 지난해 11월 이전에 제작됐다. 지난해 7월과 10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현지 프로듀서 오비 클라인과 함께 만들었다. 소속사 ‘바나’ 관계자는 “지난해 11월에 내려 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재판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마냥 미룰 수는 없었다. 1심과 항소심 사이를 발매 시점으로 잡았다”고 했다. 그는 “사회적 질타도 예상했지만, 래퍼들이 ‘쇼미더머니’에 나가지 않아도 (실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이센스가 바로 이 시점에 (앨범을 내서) 보여줘야 한다는, 힙합 팬들의 공감대 또한 강했다”고 했다.

앨범엔 열 살 때 별세한 부친을 추억하거나, 기성세대의 위선과 비뚤어진 시스템 속에 눌린 젊은이의 삶의 무게를 다룬 노래에 무게가 실려 있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대마초를 피웠어도 앨범은 잘 팔린다는 인식이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인기가 많아도 범법자여서 공연 등의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다는 점이 반면교사로 작용할 수 있다”며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라고 말했다.

바나의 김기현 대표는 “이센스를 자주 면회하고 여러 소식을 전해주지만 지금 그는 결코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말을 아꼈다. 항소심 공판은 15일부터 진행된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랩#이센스#옥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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