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天氣 명당 청와대와 주석궁의 氣 겨루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9일 03시 00분


청와대 본관.
청와대 본관.
안영배 전문기자
안영배 전문기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독교 주기도문의 한 구절처럼 풍수의 본질을 쉽게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고대 중근동을 무대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기도문을 외던 시절,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하늘의 뜻이 지상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곳을 찾아내고자 하는 감여학파(堪輿學派)가 등장했다. 하늘의 이치를 나침반 삼아 명당 길지를 추구하는 풍수가들이었다. 풍수학의 비조로 받들어지는 곽박(郭璞·276∼324)을 비롯해 원천강(袁天綱), 이순풍(李淳風) 같은 초기 풍수가가 모두 역법에 밝은 천문학자였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풍수의 고전 ‘영성정의(靈城精義)’에는 하늘의 뜻이 더욱 섬세하게 묘사돼 있다. “땅은 본래 정기(精氣)가 없으나 별빛이 내리쬐는 것으로 정기를 삼고, 땅은 원래 길흉(吉凶)이 없으나 별의 기운(星氣)으로 길흉을 삼는다.” 하늘의 뜻이 별을 매개체로 삼아 땅으로 전달돼 기운이 감돌고 나아가 인간사 길흉까지 좌우한다는 의미다.

천광조림(天光照臨), 즉 하늘의 기(빛)가 땅에 직접적으로 임하는 곳을 가리켜 이른바 ‘천기형(天氣形) 명당’이라고 한다. 신명(神明)이 밝았던 고대 한국인들은 이를 충실히 따랐다. 황남대총과 천마총 등 경주 고분군, 태왕릉과 장군총 등 중국 지안(集安) 현 퉁거우(通溝) 무덤군, 그리고 서울 석촌동 고분군 등 삼국시대 고분이 대표적인 천기형 명당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천기형 명당은 권력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천기형 기운은 명예와 권위, 지배라는 속성을 인체의 유전코드처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등장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선대(先代)의 천기형 명당 기운에 힘입어 그 자리에 올랐다고 보는 게 풍수적 시각이다. 그런데 천기형 기운은 양면의 모습을 띤다. 이 기운이 적절히 작동할 때는 출세와 권력 쟁취라는 길한 작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지나치거나 왜곡될 때는 아집과 소통 부재, 불명예라는 흉한 작용이 일어난다.

대표적인 천기형 명당인 청와대를 보자. 이 건물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 새로 조성됐는데 대통령 집무실인 본관과 거주 공간인 관저가 분리된 구조다. 권력의 핵심 터답게 두 곳 모두 하늘 기운이 직접 내려오는 곳임이 분명하다. 300∼400년 전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암벽 글자가 관저 신축 공사 중에 발견됨으로써 이곳이 길지(吉地)라는 확신은 더욱 확고해졌다.

다만 청와대 터는 천기가 너무 강하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자칫 기운이 지나치면 땅속에 잠복돼 있던 살기(煞氣)가 발동할 수도 있다. 천기형 명당 기운을 강하게 지닌 권력자일수록 이런 역기능도 비례해서 받는다. 과연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청와대에 입성한 역대 권력자가 독선과 아집의 정치,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는 소통 부재의 정치라는 꼬리표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미국의 백악관처럼 천기의 강기(剛氣)를 부드럽게 해줄 수 있는 지기(地氣)의 보충이 못내 아쉽다.

터는 그 기운에 맞지 않는 사람이 주인이 될 경우 쇠락하기도 한다.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정은이 머무는 주석궁이 이에 해당한다. 원래 평양의 주석궁은 청와대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강한 천기가 내려오던 곳이다. 그런데 최측근을 가차 없이 제거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김정은의 행보는 주석궁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비무장지대의 지뢰 도발 사건으로 야기된 청와대(박근혜)와 주석궁(김정은)의 힘겨루기는 주목할 만하다. 판문점 남북회담은 청와대의 강기가 긍정적인 작용을 한 반면 주석궁의 천기는 왜곡되고 쇠락하기 시작했음을 여실히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갓 태어난 진돗개 새끼 다섯 마리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올린 내용이 화제가 되고 있다. 국민과의 소통 의지가 담긴 대통령의 메시지로 보인다. 무엇보다 천기나 지기 같은 기(氣)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진돗개 식구들이 건강하다는 점도 다행스럽다. 청와대의 천기가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싶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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