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공정한 세상을 위하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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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경구
높으신 분들의 인사 청탁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의 공정성을 해치는 일이니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 오늘날의 청년실업 문제와 맞물려 더욱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는 것 같습니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은 이미 벼슬길에 오르긴 하였으나 빨리 출세하려는 뜻도 갖지 않았고 윗사람을 찾아 청탁하는 일도 하지 않았다. 문성공(文成公) 이이(李珥)가 이때 이조 판서로 있었는데 공의 사람됨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는 기왕이면 같은 종씨를 등용하고자 하여 사람을 통해 만나보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공은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고 말하기를 “같은 종씨이니 만나볼 수도 있겠지만 현재 인사를 맡아 보는 자리에 계시니 만날 수가 없습니다.(同宗則可相見, 在銓地則不可見)” 하였다. ‘택당집(澤堂集)’

이이는 이순신보다 9세 위입니다. 당시 인사의 전권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같은 종씨인 데다 사람됨도 뛰어나다고 하니 좋은 자리에 올려줄까 하여 만나자고 하는데 거절을 당합니다. 그 용기에 말 꺼낸 사람이 오히려 당황스럽습니다. 그 어려운 일을 이토록 쉽게 하다니,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서 이순신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갑손(鄭甲孫)은 성품이 청렴, 정직하고 엄격하여 그 자제들이 감히 사사로운 일로 부탁을 하지 못하였다. 그가 일찍이 함길도(咸吉道) 관찰사로 있을 때 조정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가던 도중 과거 급제자 명단 발표를 보았는데, 자신의 아들 이름도 거기에 들어 있었다. 공은 시관(試官)을 꾸짖으며 “늙은 놈이 감히 나에게 아첨을 하려 드는가? 내 아이는 학업이 아직도 정밀하지 못하거늘 어찌 요행으로 임금을 속일 수 있단 말인가?(老奴敢狐媚我乎? 吾兒業未精, 豈可僥倖欺君耶?)” 하고는 마침내 아들의 이름을 명단에서 빼고 시관도 파면시켰다. ‘명신록(名臣錄)’

아무리 아들이라도 아닌 건 아니라는 자세, 이런 게 원래 우리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둘 다 박재형(朴在馨)이란 분이 1884년에 펴낸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중국의 ‘소학’을 이어 우리나라에서 만든 속편이니 어린아이 교육용 책인 건 분명한데 어째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내용인 듯합니다. 하기야 모든 책이 다 그렇긴 합니다.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경구
#인사 청탁#이순신#해동속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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