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쯤 ‘묘령의 할아버지라뇨?’라는 신문 제목을 보고 기함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이례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며칠 전 나이에 관한 표현을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묘령의 할머니’ ‘묘령의 노인’, 심지어 ‘나이 지긋한 묘령의 남자’ 등 얼토당토않은 표현이 너무 많았기 때문.
묘령(妙齡). ‘스무 살 안팎의 여자 나이’를 이른다. 묘년(妙年) 방년(芳年) 방령(芳齡)도 같은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남자에게 써서는 절대 안 되며, 나이 든 사람에게도 쓸 수 없다.
묘(妙)는 ‘묘하다, 예쁘다, 젊다’는 뜻이다. 그러니 묘령은 글자 그대로 ‘가장 예쁜 나이’, ‘꽃나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묘하다’에 끌려 묘령을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뜻으로 잘못 쓰고 있다. ‘걸그룹 멤버가 묘령의 남성과 키스하고 있다’ 같은 표현이 그렇다.
‘묘령의 여인’이란 표현은 어떤가. ‘나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마음 설레게 하는 젊은 여자’라는 뜻으로 입길에 오르내린다. 사전적 의미로 ‘여인’은 ‘결혼한 여자’를 뜻하므로 만약 결혼을 안 한 여자라면 ‘묘령의 처녀’가 맞다. 그런데 처녀라는 말이 성적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에 요즘은 잘 쓰지 않는다. 그래서 ‘묘령의 여인’이라는 말이 세력을 얻어가고 있는 듯하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사전의 예문에도 올라 있다.
묘령과 같은 뜻인 ‘방년’도 20세 전후의 꽃다운 나이다. 이 역시 ‘방년 서른 살, 마흔 살’로 쓰는 이가 있지만 잘못이다.
스무 살 안팎의 남자를 일컫는 표현은 묘랑(妙郞)이다. 그런데 낯설다. 오히려 약관(弱冠)이란 표현이 귀에 익다. ‘남자 나이 20세’를 일컫는다. 예기 곡례편(曲禮篇)에서 공자가 스무 살에 관례를 한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요즘은 ‘20대의 젊은 나이’란 의미로 확대해서 쓰고 있다. 그렇더라도 ‘약관 30세의 나이로…’ 혹은 남녀 모두에게 쓰는 것은 잘못이다.
공자는 마흔 살부터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았다고 해서 ‘불혹(不惑)’이란 말을 썼다. 불혹은 딱 ‘마흔 살’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40대 전체를 불혹이라고 해선 안 된다.
예전에 생긴 말을 의미에 맞춰 엄격하게 쓰는 것은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미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원칙을 지키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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