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불안증 환자가 쓴 불안에 관한 용감한 통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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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스콧 스토셀 지음·홍한별 옮김/496쪽·2만2000원·반비

“겁쟁이는 계속 안색이 바뀌고 늘 안절부절못해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쭈그려 앉아 이 발 저 발을 바꾼다. 온갖 종류의 죽음을 상상하며 심장은 쿵쾅거리고 이가 덜덜 떨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지만 용감한 사람은 안색이 변하는 법이 없고 잠복을 시작할 때부터 한순간도 지나치게 동요하는 법이 없다.”

저자가 책에 인용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중 일부다. 미국 시사주간지 더 애틀랜틱의 편집자인 지은이는 호메로스의 분류에서 ‘심장이 쿵쾅거리고 이가 덜덜 떨리는’ 쪽이다. 그는 “불안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역사, 문학, 철학, 종교, 대중문화, 최신 학술연구에서 불안을 다룬 탐구를 모으고 여기에 불안에 얽힌 개인적 경험을 엮으려 한다”고 첫 장에 밝혔다.

이런 제목의 책에 관심을 갖고 서점에서 들춰 보는 독자는 자신이 일상에서 겪는 불안에 대한 자각을 어느 정도 하면서 살아가는 이일 것이다. 불안에 대한 지은이의 자습 기록일 뿐인 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독자에게 실질적인 정보가 될 건더기가 있어야 한다.

유용한 내용은 저자가 쓴 글보다 이곳저곳에서 끌어내 인용한 다른 이들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흐릿한 맥락에 툭툭 던져 나열한 탓에 불안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실마리로 붙들 만한 사고의 흐름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두려움은 정신의 유약함에서 나오고 이성과 무관하다.”(스피노자) “정신의 습성과 상태가 씨를 통해 아이에게 전달된다.”(히포크라테스) “사람은 어떤 대상 때문이 아니라 그 대상에 관한 생각 때문에 동요한다.”(에픽테토스) 꿰어 엮는 몫은 읽는 이 각자가 맡길 권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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