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문이 곰릉 열고…’ 앗, 글자가 거꾸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2일 03시 00분


◇글자동물원/이안 글·최미란 그림/108쪽·9500원·문학동네

책 제목은 ‘글자동물원’이고 처음 실린 동시 제목은 ‘른자동롬원’입니다. 여기서 잠깐, 두 제목 간의 차이를 아셨나요? ①같은 제목이네 ②오타인가 ③이게 뭐야 ④재미있다. 여러분은 몇 번에 해당되시나요. 이 책은 ①번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가장 보기 어려운 책입니다. 글자와 의미를 동시에 생각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만 읽게 되거든요. 책 좀 많이 읽은 어른들이 그렇게 읽지요.

이 책에 실린 동시는 콩 알을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집어 먹듯이 글자 하나하나 짚어 읽어보기를 요구합니다. 우리 글자가 가지고 있는 형태적인 특징, 의미나 소리와의 연관성 등을 섬세하게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시 한 번 읽어 볼까요? ‘절대 이 책릉 거꾸로 꽂지 마시오/문이 곰릉 열고 탈출할 수도 있…’(른자동롬원). 문과 곰이란 글자의 형태적 특징만으로 우리에게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합니다.

‘토토토 토토토/토란잎에 떨어지는/빗소리를 기다리자/ (중략) /토토토 토토토 빗속을 달려오는 우체부 아저씨 빨간 오토바이를 기다리자’(토란잎 우산)에서처럼 소리와 형태가 비슷한 느낌이 주는 재미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찧자빻자/쿵콩쿵콩/찌로ㅎ을/찧자찧자/쿵콩쿵콩/빠로ㅎ을/빻자빻자/쿵콩쿵콩/찌빠만세!’(마늘 묵찌빠)에서는 우리 글자가 가진 형태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이 시를 옮기는데 컴퓨터 자판은 끊임없이 오타라 말합니다. 시인이 아닌 게 분명합니다.)

글자가 가진 소리와 뜻은 절대적일 것 같은데, 시인은 그렇지 않다며 그 글자 너머를 바라보라 합니다. 그 너머에 삶이 있습니다. 그 시선이 아이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김혜원 어린이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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