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 속에서는 까투리 메추래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 폭으은히 내려오는 눈발 속에서는 낯이 붉은 처녀 아이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울고 웃고 수구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운명들이 모두 다 안끼어 드는 소리. …… 큰놈에겐 큰 눈물 자죽, 작은놈에겐 작은 웃음 흔적, 큰 이얘기 작은 이얘기들이 오부록이 도란그리며 안끼어 오는 소리. ……
괜찬타, …… 괜찬타, …… 괜찬타, …… 괜찬타, ……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산도 산도 청산도 안끼어 드는 소리. ……
미당 얘기만 하면 비난받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의식이 없다’는 것이리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나쁜 행적을 남긴 이의 문학은 가치가 없다는 생각은 지나치다. 물론 엉망으로 살아도 작품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극단론은 대개 허망한 법이다.
이 시에서 중요한 건 ‘괜찬타’라는 말 자체이다. 눈발의 모양이 ‘괜, 찬, 타’라는 소리로 또박또박 새겨지고, 이 소리들이 모여 ‘괜찮다’는 뜻을 이룬다. 소리의 배열을 보면 처음에 눈은 천천히, 나중엔 쏟아지듯 빠르게 내리는 듯하다. 그것은 시인이 뒤로 갈수록, 신들린 듯 정신이 나간 듯 ‘괜찬타’를 중얼거리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그에게, 그리고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 말뿐이라 믿고 있는 듯하다.
이 시는 미당 인생의 큰 위기, 전쟁과 피란과 정신착란의 와중에 씌었다. 지난번의 큰 사고에서 가족을 잃은 분들에게 이 시가 따스한 다독임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이처럼 한 인간이 제 생의 가장 ‘괜찮지 않은’ 상태에서 힘겹게 건져 올린 한마디에 다른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 깃들기도 한다. 이 ‘괜찬타’는 ‘진짜’인 것이다.
‘의식이 없다’는 말은 혼미한 삶을 나무라는 이들의 전가의 보도지만, 따지자면 그 말은 원래 시의 것이다. 시인은 제 글쓰기의 어느 순간에는 자신 없게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 있게 모르는 사람이 되어 말한다. 정신없는 상태란 저 ‘괜찬타’가 알려주듯 바로 시인에게서 시가 태어나는 순간의 상태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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