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마치 오랫동안 그 자리에 누워 있었던 사람처럼 보입니다. 혹은 시끄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나무 그늘에 홀로 누워 낮잠을 청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윗몸을 일으켜 앉아보려는 소년의 자세는 어색하기 그지없어 보입니다. 소녀를 향한 눈빛엔 경계와 의심이 가득하고 이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두 손은 여전히 땅에 닿아 있습니다. 꽃을 내미는 소녀가 소년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 보지만 소년은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가 소녀에게 이렇게 경직된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아마도, 소녀가 그에게 꽃을 내밀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꽃이라니. 주린 배를 실컷 채울 수 있는 빵이나 우유도 아닌 꽃이라니. 하고많은 것 중 꽃이라니. 이렇게 말하는 그의 내면의 혼란이 여기까지 전해져 오는 듯합니다. 소년은 난생처음 받아보는 꽃이라는 친절에 마음이 연두부처럼 으깨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습니다. 이는 소년이 사는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종류의 것이었으니까요.
소녀는 어떨까요? 소녀는 들판 위를 쏘다니고 있었습니다.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흐트러지고 붉은 원피스가 구겨질 때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들판의 어느 구석에서 푸른 초롱꽃을 발견하게 된 순간 지금까지의 피로가 모두 사라질 정도로 기쁨에 가득 차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매일 같은 자리에 홀로 누워 있는 소년이 떠올랐고 소년에게 이 초롱꽃을 보여주고 싶어졌습니다. 그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과 함께 들판을 달려주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A 군이 생각납니다. 자살 시도를 여러 번 한 A 군은 아무런 인생의 기대도 희망도 없다는 듯이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상태였습니다. 처음 치료실로 들어서던 날의 경계심 가득한 A 군의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A 군은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하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A 군이 잠시 인생에서 원치 않게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힘든 환경 가운데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소녀가 소년에게 꽃을 내밀며 건넸던 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늘 아래서 일어나 소년을 다시 달리게 했던 초롱꽃 속에 담겨 있던 불빛, ‘넌 소중한 사람이야’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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