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낮추며 헌신-봉사의 삶…한국교회 영성의 뿌리 내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5일 03시 00분


아펜젤러-언더우드 발자취 좇아 뉴저지 등 美 동부 탐방

헨리 아펜젤러
헨리 아펜젤러
《 #1902년 6월 11일 오후 10시. 목포로 항해하는 한 선박이 전북 군산시 앞 어청도 부근을 지나던 중 다른 배와 충돌했다.
배가 급격히 침몰했고 한 조선인 소녀가 물에 빠졌다. 모두가 망설이는 찰나에 한 미국인이 물에 뛰어내려 소녀를 건져냈다. 이후 자신은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다.

호러스 언더우드
호러스 언더우드
#1916년 10월 12일 오후 3시 미국 애틀랜틱시티. 낯선 땅에서 평생 봉사활동을 하다 극도로 쇠약해진 그는 아내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내가…, 거기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I think, I could travel that far).” “어디요?
코리아(Where, dear, Korea)?” 그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숨을 거뒀다. 》

전자는 헨리 아펜젤러(1858∼1902), 후자는 호러스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다. 130년 전 한 배에 몸을 싣고 조선에 도착한 이들은 자신들을 낮추고 희생하는 삶으로 국내 개신교 영성의 뿌리가 됐다.

최근 세속화와 분열로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 교회에서 이들 선교사의 영성을 본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7∼9일 새에덴교회의 협조로 뉴욕과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주에 위치한 두 선교사의 발자취를 탐방했다.

7일 오전 미국 동북부 뉴저지 주 노스버겐. 마을 언덕 위로 그로브 개혁교회가 보였다. 이곳은 1872년 영국 런던에서 이주해온 언더우드가 다니던 교회다. 교회 옆 신자 묘지에는 언더우드 가족 묘역이 보였다. 그의 유해가 1999년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이전됐음에도 그의 묘비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언더우드가 다닌 미국 뉴저지 주 뉴브런즈윅 신학교 도서관 2층의 언더우드 흉상과 관련 서적(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아펜젤러가 신학을 공부한 드루대 신학부 건물이다. 이들은 학창시절부터 지역 사회에 봉사하며 선교사를 꿈꿨다. 노스버겐·뉴브런즈윅=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언더우드가 다닌 미국 뉴저지 주 뉴브런즈윅 신학교 도서관 2층의 언더우드 흉상과 관련 서적(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아펜젤러가 신학을 공부한 드루대 신학부 건물이다. 이들은 학창시절부터 지역 사회에 봉사하며 선교사를 꿈꿨다. 노스버겐·뉴브런즈윅=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언더우드는 이 마을에서 살며 뉴저지 주 뉴브런즈윅 신학교를 다녔다. 8일 오전 방문한 이 학교는 언더우드가 졸업한 지 13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를 상징적 존재로 기억하고 있었다. 도서관 실내에는 언더우드 흉상과 관련 서적들이 전시됐고, 언더우드 연구도 활발했다. 이 대학 김진홍 선교학 교수와 중세 교회사를 연구해 온 존 코클리 교수는 각종 기록물을 보여주며 언더우드의 학창시절에 대해 설명했다. “당시 동급생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유명했죠. ‘언더우드는 매일 코트 끝자락을 휘날리며 거리를 다닌다.’ 그만큼 지역을 돌아다니며 몸소 봉사, 선교를 실천한 거죠.”(코틀리 교수)

노스버겐에서 자동차로 불과 1시간 남짓 달리면 아펜젤러의 학창 시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드루신학교(현 드루대 전신)가 나온다. 두 선교사가 조선에서 초교파적으로 협력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언더우드는 장로교, 아펜젤러는 감리교로 소속 교단은 달랐지만 신학교 시절부터 교류해 왔다. 김 교수는 “북미의 다문화, 다교파 환경에서 성장한 두 선교사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을 체험했다”며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선교현장에서도 열린 마음으로 활동하며 한국 개신교 선교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고 했다.

1867년 세워진 이 학교의 고문서도서관에는 아펜젤러가 1881년 대학 입학 당시 기록한 자기소개서를 비롯해 한국에서 학교에 보낸 편지가 보관됐다. 그는 신앙을 전파하는 선교사이자 자신이 속했던 신학교를 비롯한 미국 내 개신교 공동체에 조선을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도서관 책임자 크리스토퍼 앤더슨 씨도 “아펜젤러가 학교에 보낸 선교 편지와 기록들이 지역 언론에 보도됐고, 이를 통해 지역민들이 조선에 대해 잘 알게 됐다”고 했다.

8일 방문한 펜실베이니아 주 랭커스터제일감리교회에는 아펜젤러 추모 예배당이 별도로 설치돼 있었다. 1802년에 창립된 이 교회는 아펜젤러가 한국 선교 중 안식년 때 귀국해 예배를 보던 곳. 매년 봄 아펜젤러 추모 행사도 열린다.

필라델피아 내 미국장로교역사연구소에는 1893년 언더우드가 릴리아스 호턴 여사와 첫째 외아들 호턴 언더우드와 함께 찍은 사진 등이 주요 자료로 보관돼 있다.

미국 동부 곳곳에 남겨진 두 선교사의 흔적에서는 머나먼 이국땅 조선에서 사랑과 희생을 실천한 숨결이 느껴졌다. 새에덴교회 소강석 담임목사는 “두 선교사의 열정과 사랑은 오늘날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며 “교회의 헌신과 봉사, 살신성인, 언행일치의 실행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노스버겐·뉴브런즈윅=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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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추천 많은 댓글

  • 2015-09-15 19:52:16

    저런 분들에 의해서 건전하고 싱싱한 뿌리가 내린 적도 있었지요 허나 지금은 뿌리는 번성한데 글쎄요 싱싱하고 건전한가요? 꼴랑하나를 겨우하고도 백천가지나 떠들어 자랑하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그 믿음의 부작용으로 이 사회는 만신창이 되어갑니다 부작용도 책임있게 고쳐가시도록

  • 2015-09-15 18:50:14

    출산율을 빨리 늘려야 합니다. 한국이 일본을 추월 할아면, 통일 한국의 인구가 9천만명 되야 됩니다. 출산율을 긴급하게 늘려야 됩니다. 출산율이 낮으면, 노인인구 만 늘어납니다. 이 메세지 모든 한국인들 한테 전파 해주세요! KOREA MUST CHANGE NOW!

  • 2015-09-15 18:48:56

    저는 한국 대해서 많이 걱정 하고 있는 교포 입니다. 낮은 출산율 문제는 빨리 고쳐야지 아니면 일본 처럼 인구 통계 학적으로 망한나라 됩니다. 한국 산업, K-Pop도 망하고 경제도 줄어듭니다. 출산율을 빨리 늘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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