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드라이버가 맞지 않나. 아니면 축구공을 몰듯 택시를 ‘드리블’하는 폭주기사 이야기일지도.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택시 드리벌’이다. 사실 연극 좀 봤다는 사람은 알만한 작품이다.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극작가인 장진이 쓴 연극이다. 1997년에 초연이 됐고, 2000년과 2004년에 재공연이 됐다. 거쳐 간 주인공(물론 택시기사다)의 면면이 훌륭하다. 1997년 초연은 최민식, 2000년 권해효, 2004년에는 정재영과 강성진이 택시를 몰았다. ‘택시 드리벌’이 11년 만에 ‘빈 차’ 점등을 하고 돌아왔다. 공연계의 확고한 ‘설계자’로 자리매김한 김수로프로젝트의 12탄이다. 지난 11개 작품은 흥행이 잘된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재미없다” 내지는 “완성도가 떨어진다” 소리를 들은 작품은 없었다. 12탄도 믿고 볼만하다는 얘기다.
● 망가진 박건형, 몸개그 어깨 3인방에 폭소가 ‘빵빵’
주인공은 택시기사 덕배다. 박건형, 김민교, 김도현이 번갈아 ‘스티어링 휠(운전대)’을 잡는다. 강원도 화천에서 자란 덕배는 할 줄 아는 게 운전밖에 없는 39세 노총각이다. “너무 많이 배워도 안 된다”는 아버지의 철학(?)으로 중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영어를 몰라 ‘드라이버’를 ‘드리벌’이라고 하는 통에 늘 핀잔을 듣는다. 택시 드리벌 덕배가 팍팍한 도시 서울에서 손님들을 태우며 겪는 이야기다. 장진 특유의 개그가 에피소드마다 가을 꽃게 속처럼 꽉꽉 들어차 있다. 눈을 부릅뜨고 입술을 깨물어도 빵빵 터지고 만다. 어쩌면 이렇게 택시기사의 하루를 농밀하게 그렸을까. ‘장진이란 사람은 과연 천재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장진의 부친이 실제로 택시기사였다고 한다.
덕배는 박건형에게 일종의 도전이자 실험이다. 지금까지 맡아 온 역할 중 가장 구질구질한 인물일 것이다. 덕배를 하기엔 지나치게 핸섬한 외모가 아닐까 싶었는데 막상 보니 기우였다. 본인에게는 미안하지만 택시 운전대를 잡고 히히히 웃고 있는 박건형은 참 찌질하고 모자라 보였다.
극에 소금 팍, 후추 팍팍 치는 인물들은 역시 조연들이다.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가장 크게 나오는 장면은 어깨(건달이다)들이 등장할 때다. 김수로, 강성진, 임철형, 박준후와 같은 걸출한 배우들이 어깨들로 나온다. 건달 특유의 걸쭉한 대사(차마 지면에 옮기지는 못하겠다)는 물론 숨을 헐떡일 정도로 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은 정말 대단했다. 건달들이 헉헉대며 퇴장할 때 관객들은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뮤지컬이 아닌 연극에서 극 중에 관객이 박수를 치는 일은 극히 드물다(사실 쳐서는 안 될 것이다).
방금 성형수술을 마쳐 선글라스와 마스크, 붕대로 얼굴을 감싼 네 여자 승객의 에피소드도 ‘끝내준다’. 한 마디 말도 없이 넷이 스마트폰 메신저로 나누는 대화내용(주로 덕배 뒷담화다)에 객석은 뒤집어진다.
초연 이후 세월이 많이 흘러 요즘 트렌드에 맞게 장면과 대사를 꽤 바꿨다고 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재밌어지는 묘한 연극이다. 마치 가속페달을 밟는 것 같다. 재미의 ‘메다’가 철컥철컥 올라간다. 11월22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승객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