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펜스의 한국 블로그]서울의 숨겨진 보석 ‘독립서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7일 03시 00분


림펜스
고백할 게 있다. 몇 개월 전에 나온 칼럼에서 난 한국인과 유럽인의 독서문화를 비교하면서 이렇게 썼다. “매일 일하느라 정신없는 한국의 샐러리맨들에겐 그런 여유가 없어 보인다. 생활 속 스트레스가 심한 그들에게 동네 서점에 들러볼 생각이 들긴 할까. 설령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도 동네에 자주 들를 만한 괜찮은 서점이 있기는 할까. 슬프게도 한국 사회는 ‘친독서’ 환경은 아닌 듯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서점에 대한 부분은 좀 불공평하게 표현한 것임을 시인해야 할 것 같다. 사실은 현재 한국에도 들를 만한 괜찮은 독립 서점이 꽤 있다. 나야말로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그 매력적인 장소들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

어느 블로그에서 최근 발견한 ‘독립출판물 서점 리스트’에 따르면 소규모 출판물 가게가 제일 많은 지역은 역시 서울이며(무려 45군데) 부산, 대구, 그리고 여러 중소도시에도 작은 책방들이 있다. ‘동네서점 지도’도 친구 덕분에 알게 되었다. 퍼니플랜이란 앱 개발업체에서 만든 지도로, 전국 60여 개 동네서점 위치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며 유익한 정보가 풍부한 ‘동네서점 인덱스’도 공유돼 있다. 목록과 지도를 보며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동네서점이 대부분임을 깨달았고 올가을 시간을 내서 서울 독립서점 탐험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보광동에 최근 문을 연 LGBT 책방 ‘햇빛서점’과 염리동 ‘퇴근길 책 한잔’에도 꼭 한번 들러 보고 싶고, 다른 서점들도 예외 없이 궁금하고 방문하고 싶다. 내가 강북지역에서 이미 가 본 적이 있는 작은 서점은 열 곳 정도밖에 안 되지만 모두 고유의 개성이 있었다. 책방이나 북 카페는 당연히 온·오프라인 대형서점만큼 폭넓은 선택을 제공할 수 없지만, 그 대신 장점도 많다. 인간미 없는 편인 대형서점과는 전혀 다른 체험을 제안하는 장소들이다. 서유럽 동네서점들이 경쟁력이 있게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이유인 것 같다.

한국 독립서점들은 브뤼셀의 내 단골 동네서점들보다 작은 편이며 수도 비교적 적긴 한데, 요새 새롭게 생기고 있는 한국 책방들은 유럽 서점보다 도서 선정이 더욱더 날카로운 때가 많다. 한국 독립서점에서 강하게 느끼는 건 서적상이 정말로 일종의 ‘북 큐레이터’라는 점이다. 이들은 본인들의 취향과 판단에 따라 신경 써서 국내외 도서를 주관적으로 선택한다. 책을 진열하는 방식도 가게마다 달라서 서점의 성격이 천차만별이다. 색다른 서점에서 독특한 책을 발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 얼마나 좋은가? 그 책을 직접 선택한 사람에게서 자세한 설명과 개인적 추천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훌륭한 맞춤 서비스가 아닐까? 책과 책 이외에도 수제 문구, 엽서, 가방, 미술품 등을 품위 있게 잘 선정해 판매하기도 해 특별한 선물을 절로 찾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동네 서점들은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사람들과 만나기에 좋은 사회적 공간의 역할도 한다. 용산구 ‘테이크아웃드로잉 치읓’ 같은 곳은 낡은 주택을 스타일리시하게 개조해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는 카페다. 홍익대 앞 ‘1984’ 카페도 다채로운 책, 옷, 장신구가 진열되어 있으며 햇빛이 드는 정감 있는 장소다. 신촌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술집(정확히는 술 ‘지하’)인 ‘쉬바 펍’조차도 곧 책을 팔기 시작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어 기대가 크다. 동네 책방은 아무리 작아도 그 동네 주민들에게 상당히 소중한 문화 중심지가 될 수 있다. 동네 아이들에게도 매력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쉬바 펍’은 말고). 불현듯 내가 좋아하는 단골 브뤼셀 책방에 있는 화려한 ‘아동 코너’가 생각난다. 아무래도 손님들이 만족하는 만큼 운영자가 느끼는 보람도 클 것이다. 장사가 잘되면 의미 있게 번창하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사실에 더욱 뿌듯할 테고.

요새 출판 관계자들은 책 시장을 늘 부정적으로 얘기하는데 나는 조금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세련된 독립서점이 생길 때마다 기뻐하며 가 볼 참이다. 더군다나 다가오는 2015년 서울와우북페스티벌 프로그램을 보면 한국 책 문화가 그래도 팔팔하게 살아있단 생각이 든다. 한국은 ‘친독서’ 환경이 아닌 듯하단 의견을 썼던 그 녀석(나)은 자기반성을 제대로 해야 되겠군.

나는 오늘 긍정적이게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책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는 많은 멋진 분들에게 고맙다. 매일 2200번 악몽의 만원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것을 견딜 만하게 해줘 고맙다. 어느 날 우리 동네에도 편의점 대신 책방이 생길 수 있으리란 희망을 줘 고맙다. 기존과 다르게, 기발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줘 고맙다.

※벨기에 출신인 필자(39)는 벨기에 명문 루뱅대 법학과와 브뤼셀 KUB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다 현재 출판사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으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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