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문에 앞서 쿠바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79)과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89)의 만남은 흥미로웠습니다. 둘의 만남은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이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제게는 ‘살아있는 고수(高手)’, 이 단어가 머리를 스쳤습니다.
카스트로는 1953년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의 변혁을 이끈 ‘혁명의 아이콘’이었죠. 반면 교황은 물이 새는 ‘노아의 방주’로 불려온 바티칸 개혁을 이끌고 있는 새로운 아이콘입니다.
한데 흥미로운 것은 두 거물의 ‘의상’입니다. 세 줄 무늬가 선명한 아디다스 체육복을 입은 카스트로나 흰색 수단에 어깨 망토의 일종인 에스클라비나(Esclavina)를 걸친 교황이나 만만치 않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만약 둘 중 누군가가 화려한 정장이나 특별히 다른 옷을 챙겨 입었다면, 그가 기 싸움에서 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군복을 즐겨 입던 카스트로 전 의장이 아디다스 운동복을 즐겨 입는 것은 장출혈 수술을 받은 2006년 이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아디다스 짝사랑’에 대한 이유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교황의 단출한 의상에도 화제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공항에서 머리에 쓴 주케토(이탈리아어로 작은 바가지)가 바람에 날아가는가 하면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데 에스클라비나가 얼굴을 감싸버리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바람 잘 날’ 없습니다. 교황의 난처한 모습을 기가 막히게 찍은 사진을 모은 블로그들도 있습니다.
주케토가 하도 바람에 잘 날아다녀 가까운 신부님들께 머리에 고정할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답변이 엇갈리네요. 머리 뒤쪽에 작은 단추가 있어 고정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는 분도 있고, 고정할 방법이 없다는 분도 있습니다.
에스클라비나는 노예 또는 종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에스클라보(Esclavo)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교황이 ‘하느님의 종들의 종’으로도 불리는 것을 감안하면 어깨에 실린 망토의 의미를 살필 수 있습니다. 에스클라비나와 비슷하지만 조금 긴 모제타도 있습니다. 모제타는 고위 성직자들이 입는 것으로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는 겨울용 붉은 모제타와 부활절용 하얀 모제타를 즐겨 입었습니다. 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제타를 귀족적이고 부유한 전통으로 여겨 거의 입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엉뚱한 상상도 해 봅니다. 두 고수들은 역사적인 만남에서 골치 아픈 얘기 말고 이런 얘기도 나누지 않았을까요. “피델, 아디다스 줄무늬 운동복 정말 잘 어울려요.” “작은 바가지, 한번 써 봅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