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4일 일요일 흐림. 파리, 2분 음표. #177 Jakob Bro ‘Oktober’(2015년)
개미굴 같은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을 부단히도 오가면서 난 한국에서라면 신체기관처럼 붙이고 다녔을 이어폰을 거의 귀에 꽂지 않았다.
파리의 청각 세계를 느끼고 싶어서? 아니. 소매치기가 많다니 겁나서. 귀라도 열어둬야 안 당하지. 지갑을 노리는 손길이 없다는 안도감이 든 뒤 비로소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덴마크 기타리스트 야곱 브로의 앨범 ‘Gefion’의 음파는 이국의 낯선 풍경, 쓸쓸한 이방인의 마음에 기다렸다는 듯 사뿐히 내려서 들러붙었다.
어느 쌀쌀하고 어두운 밤, 파리 시내 재즈 클럽 ‘선셋(Sunset)’에서 야곱 브로 트리오의 공연을 봤다. 나윤선, 아마드 자말, 티그란 하마시안, 미셸 페트루치아니의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은 입구의 인상은 강렬했다. 지하로 내려가니 희미한 조명 아래 비좁은 객석과 무대를 둘러싼 아치형 천장의 작은 소굴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관객이라야 30명 남짓. 폴 모션, 토마쉬 스탄코, 리 코니츠와 협연해온 건 차치하더라도 올해 초 저 유명한 ECM레코드에서 앨범 낸 기타리스트인데…. 어쨌든 지척에서 볼 수 있으니 좋았다.
드러머는 앨범에 참여한 욘 크리스텐센 대신 조이 배런. 세 연주자가 눈빛을 오가면서 펼치는 즉흥 교감은 가뜩이나 동굴 같은 공연장 안에 비밀결사 같은 분위기를 더했다. 브로는 실 잣는 아낙처럼 땀을 흘리면서 기타에 묻은 영롱하고 몽롱한 음표들을 조심스레 뽑아냈다.
출연자 대기실도 없어서 중간 휴식 시간에 객석에 앉아 땀을 닦는 브로와 난 말도 섞을 수 있었다. 그는 “폴 모션, 지미 헨드릭스, 마크 홀리스(전 ‘톡톡’ 멤버)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미국 뉴욕의 ‘뉴 스쿨’에서 재즈를 공부해서 스윙도 제법 할 줄 안다”며 웃었다.
‘Gefion’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여신 이름이자 브로의 고국인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있는 유명한 분수 이름이다. 가사 한 줄 없는 이 앨범은 그 도시에서 동화처럼 흘렀다. 영화 ‘반지의 제왕’ 속 나무수염의 행진을 연상시키는 ‘And They All Came Marching Out of the Woods’, 눈 속에 묻힌 슬픈 미스터리 같은 ‘White’, 공항에서 들은 ‘Airport Poem’, 그리고 종결부의 비극적인 ‘Oktober’(10월)와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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