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 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 떼를 세어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염전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듯하고 소금창고 역시 그런 듯하다. 늦가을이다. 이 사람은 그때 젊었으나 지금은 젊지도 늙지도 않은 마흔 살이 되었다. 마흔은 인생 전반이 끝나려 하거나 후반이 시작되려 하는 나이, 앞을 봐야 하지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이상한 나이다. 마흔이 되기 전부터 읽었는데 쉰이 넘어서도 자꾸 꺼내 읽게 되는 시.
시는 같은 구절들을 은은하게 반복하고, 짧은 시행 긴 시행들을 교차시키며 읽는 마음을 애잔하고 유려한 리듬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염전(소금창고)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바다로 가는 길’ 같은 구절들. 염전과 소금창고를 비롯하여 옛날 노래가 적힌 책, 마른 갈대꽃, 기우는 햇살 같은 사물들이 아련히 과거의 잔영을 느끼게 할 뿐 이 시에 인간의 사연은 드러나 있지 않다. 음악이 그러하듯 시의 리듬은 내용 없이도 우리를 설득해 버린다. 그래, 뭐라 말하기 어려운 그런 시간이 내게도 있었지….
이 시의 호소력은 화법에도 있다. 그 옛날 그 장소에 다시 와서, 이제 바뀐 풍경을 가늠할 뿐 다가서지 않는 이 사람은 입을 꿰맨 듯 말이 없지만, 사실은 눈으로 말하는 중이다. 지그시 힘을 주어 길 끝을 보며 한 번, 다시 핀 갈꽃에 눈부셔하며 두 번, 그리고 고개 들어 눈물을 떨어뜨리며 또 한 번. 시에는 시를 시로 만들어주는 ‘시의 눈’이 있다고 했거니와 이 시의 마지막 두 줄은 그에 값하고도 남는 듯한데, 이는 바로 저 세 번의 글썽이는 침묵이 낳은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건 어쩌면 온갖 찬란한 내일이 아니라 몇몇 희미한 옛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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