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윤 씨의 ‘Surveillance Structure(감시의 구조) 1’. 일상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받아들여야 하는 ‘아파트 공화국’의 기이한 프라이버시를 작품 외형과 이야기 구조를 통해 성찰했다.
고즈넉이 글 몇 줄 읽을 공간 찾기가 만만찮을 만큼 어수선한 가을이다. 책 한 권이나 벗 한 사람과 더불어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을 찾아가 보길 권한다. 11월 29일까지 열리는 ‘창작지원작가전’과 계절을 넘기며 재정비한 상설전 ‘선비와 조각’이 맞물려, 책과 사람에 빠져들기 넉넉한 작은 숲 닮은 공간을 이뤘다.
2009년 시작한 창작지원작가전은 해마다 유망한 젊은 작가 3인을 선정해 지원하는 기획전이다. 올해는 강정윤(26) 김지민(40) 송규호 씨(30)가 각자의 이야기를 전개했다.
강정윤 씨는 태어난 뒤 줄곧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만 경험해 온 시간을 작업 모티브로 삼았다. 전시실 벽면을 비스듬히 등지고 거무스름한 아파트 한 동이 높이 4m, 너비 8m로 축약돼 서 있다. 한밤 어둠 속에서 불규칙하게 점멸하는 불빛의 기억을 모아 놓은 이미지다. 저렴한 건축자재인 시멘트 블록을 쌓아올린 듯 보이지만 실체는 시멘트를 칠한 나무 조각이다. 블록 구멍 280개 중 28개에는 투명아크릴판을 9, 10장씩 겹쳐 삽입했다. 침대, 책상, 옷장, 의자 등을 겹겹의 아크릴판에 따로따로 새겨 넣어 공간의 깊이를 표현하고 발광다이오드(LED)를 심었다. 균일하게 구획해 줄지어 쌓은 공간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제한된 선택을 표상한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듯 끊임없이 서로를 훔쳐보는 기이한 삶의 형태에 대한 복잡한 심사를 담았다. 집 맞은편 아파트를 촬영하다 몰래카메라 범죄자로 의심받았던 소동의 흔적도 작품에 배어 있다.
레진으로 빚은 인체상에 우레탄 렌즈로 만든 안구를 사이클로프스 머리처럼 붙인 김지민 씨의 ‘홀릭 패밀리’.김지민 씨는 우레탄과 레진으로 눈동자 조각을 빚었다. 벽에 걸린 눈동자 부조 2개 중 왼쪽은 남성, 오른쪽은 여성의 눈이다. 확대해 그린 남성의 눈동자에는 필름카메라, 시가커터, 넥타이, 지폐클립, 가죽가방이 빽빽이 맺혔다. 여성의 눈동자는 무쇠 솥, 커피머신, 도기, 식칼, 시계로 엮은 만다라다. 가족상 속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정답게 서 있지만 눈동자에는 전혀 다른 이미지가 빼곡한 것. 허허로운 집착에 의지해 일상을 견뎌내는 현대인의 모습이 그 눈 속에 있다. 전시실을 부유하듯 설치한 레진 금붕어 5마리는 양 눈에 대비되는 단어의 쌍을 품었다. ‘무관심’과 ‘사랑’. ‘용기’와 ‘이기심’…. 해석의 지침은 없다.
오르간에서 페달을 분리해 맞은편 의자에서 밟을 수 있게 만든 송규호 씨의 ‘Drift(이동)’. 실제로 관객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연주하며 서로의 호흡을 가늠해볼 수 있도록 했다. 김종영미술관 제공송규호 씨 방은 동행이 있는 편이 좋다. 직접 걸터앉거나 연주할 수 있는 설치작품이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나란히 놓여 상이한 속도로 회전하는 의자 2개, 페달을 멀찌감치 분리해 놓은 오르간을 통해 낯선 관계 맺음의 상황을 제시한다.
상설전은 김종영의 조각보다 서예에 초점을 맞췄다. 한 자 한 자 신중히 골라 망설임 없이 한 호흡에 내려쓴 문장이 후배 예술가들의 고민을 때로 어루만지고 때로 털어낸다. ‘맹자’에서 옮겨 쓴 글귀를 곱씹으며 공간 틈새에 책을 품고 앉아 보자. “선(善)을 가득 채워 실하게 된 것을 아름다움(美)이라 한다.” 자리 털고 일어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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