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그 놀라운 역사/티나 캐시디 지음/최세문 등 옮김/512쪽·2만 원·후마니타스
직립보행으로 출산 더 어려워져… 중세 유럽에선 산파가 의사 역할
산고 줄일 다양한 방법 고안돼
책 표지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마땅히 읽어야 할 책’이라는 추천사가 쓰여 있다. 미국 일간지 보스턴글로브의 기자인 저자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겪는 출산을 제왕절개로 경험하며 아이 낳는 일에 무지했던 자신을 발견한다. 저자는 출산에 대한 취재 욕심에 불타 옛 문헌과 자료를 찾아 인류 출산의 역사를 정리했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35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인 루시는 키 122cm 정도에 태아의 머리가 레몬만큼 작아도 낳을 수 없을 만큼 골반이 작았다. 이 사실은 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하고 더 큰 머리를 가진 아이를 낳기 시작함에 따라 출산이 훨씬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릴라는 평균 자기 몸무게의 약 2%에 해당하는 몸무게의 새끼를 낳는다. 인간은 약 6%다. 원숭이와 북극곰은 2분 만에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인류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침팬지와 같은 골반을 가졌다면 아기 낳는 일은 훨씬 쉬울 것이다. 그 대신 설피(눈 신발)를 신은 것처럼 어기적거리며 걸어야 할 것이다.
아이 낳는 일이 힘들어지면서 조산사가 큰 역할을 했다. 서양 중세 조산사는 대부분 노령의 혼자 사는 여성이 많았다. 조산사들은 마녀사냥의 주요 희생양이었다. 1486년 독일계 수사들이 쓴 마녀사냥 지침서 ‘마녀들의 망치’에는 “가톨릭 신앙에 산파보다 해악을 끼치는 것은 없다”고 쓰여 있다. 산파들은 남자 없이 살기 때문에 먹고살려면 사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희생당했다.
지금은 많은 이가 병원에서 의사의 도움을 받지만 조산사의 위력은 여전하다. 출산의 절반 이상을 조산사가 주도하는 네덜란드의 출산 시 모성 사망률은 10만 명당 16명으로 미국(17명)보다 낮다. 네덜란드에서 출산의 약 30%는 집에서 이루어진다.
아프리카 차드에서는 ‘임신한 여성은 무덤에 한쪽 발을 걸고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출산이 위험하고 고통이 크다는 뜻이다. 5000년 전 이집트인과 인도인은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아편을 이용했다. 그리스인은 아스피린의 원조 격인 버드나무 껍질을 씹었고, 안데스 산맥 사람들은 코카인이 주성분인 코카 잎을 씹었다. 또 고대에는 산도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화식조(날지 못하는 큰 새)의 항문을 먹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제왕절개가 있다. 신화에는 제왕절개가 자주 등장한다. 의술과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술과 다산의 신 디오니소스는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석가모니도 산모 옆구리의 절개 부위를 통해 태어났다. 1787∼1876년 파리에서 제왕절개 후 생존한 산모가 없었다. 영국에서는 1793년, 미국에서는 1794년 제왕절개술이 처음 성공했다.
산모의 안정을 위해 요즘은 남편이 분만실에 함께 들어가는 일이 많아졌다. 이는 과연 효과가 있을까? 미국의 산부인과 전문의 로버트 브래들리가 1962년 출산 사례 4000여 건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남편이 참여한 경우 90% 이상에서 약물을 전혀 쓰지 않고 출산을 할 수 있었다.
남성이 출산에 다른 방법으로 기여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출산 직전 아기를 깨워 더 쉽게 나오게 하기 위해서 성관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17세기 프랑스 의사 자크 기예모도 진통 중 성관계를 권장했다. 현대 과학이 밝혀 낸 바에 따르면 정자는 자궁경관이 열리도록 도와주는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호르몬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