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산하 출판유통심의위원회에서는 13일 소설가 김훈의 신작 ‘라면을 끓이며’를 두고 열띤 논쟁이 펼쳐졌다. 최근 이 책을 낸 문학동네 출판사와 서점들이 ‘라면…’을 구매한 독자에게 작가 얼굴이 새겨진 냄비와 라면을 사은품으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날 장시간의 심의 결과 ‘라면…’ 사은품 건은 도서정가제 위반으로 결정됐다.
○ 가방, 향수, 전등… 다양해지는 책 사은품들
“파우치를 샀더니 책이 딸려 왔어요!” 회사원 김모 씨(33)는 최근 한 온라인서점에서 ‘책을 3만 원어치 이상 구입하면 파우치를 사은품으로 준다’는 이벤트를 봤다. 책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파우치가 마음에 든 김 씨는 대충 몇 권을 골라 결제했다.
김 씨처럼 “‘득템’하기 위해 책을 샀다”는 독자가 적지 않다. 대형서점마다 독특한 사은품 경쟁이 불붙으면서 사은품 때문에 책을 사는 소비자까지 등장한 것. 교보문고는 책을 사면 헤르만 헤세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명문장이 새겨진 에스프레소 잔과 ‘파수꾼’ ‘오만과 편견’ 등 세계문학 북디자인이 들어간 스마트폰 케이스를 주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예스24는 소설가 은희경 김주영 등의 작품세계가 포함된 ‘북노트’를 제작해 사은품으로 제공한다. 인터파크는 클러치백이나 한정판 향수를, 알라딘은 미국 워너브러더스와 저작권 계약을 맺고 배트맨 관련 상품 등을 사은품으로 준다.
소설가 A 씨는 “요즘 출판사 관계자나 대형서점 MD(구매담당자)들을 만나면 ‘사은품 기획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며 “배보다 배꼽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 사은품이라도 좋아야 vs 도서정가제 위반
독자들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대학원생 최주희 씨(27)는 “도서정가제로 책값 할인도 줄었는데 사은품이라도 좋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된 새 도서정가제에 따르면 책값의 10%는 가격 할인, 5%는 경품 혹은 적립금(마일리지) 제공이 가능하다. 즉, 정가 1만 원짜리 책을 사면 1000원(10%)을 할인받고, 500원(5%)에 해당되는 적립금(500포인트)이나 사은품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사은품이 고급화되면서 5%보다 높을 수 있다는 것. 13일 출판유통심의위원회가 ‘라면…’ 사은품에 대해 도서정가제 위반을 결정한 이유도 냄비와 라면 가격이 책 가격(1만5000원)의 5%인 750원보다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위원회 조사 결과 냄비 제조원가는 1800원, 라면은 534원이었다. 문학동네와 이벤트를 연 서점들은 신고 조치에 따라 향후 과태료를 물게 된다.
서점들은 고급스러운 사은품은 소비자가 해당 온라인 서점 구매를 통해 쌓아온 적립금(포인트)을 추가로 보태야 받을 수 있어 정가제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사은품이 대량으로 주문 생산되기 때문에 책값의 5%에 맞출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 위원회는 독자가 다른 책을 구입해 쌓아온 적립금을 차감해 사은품을 주더라도 사은품 가격을 ‘시중 판매가’보다 낮게 책정하면 도서정가제 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진흥원 이상현 출판유통팀장은 “책 사은품에 대한 단속이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현행법을 보완해 유사할인 마케팅에 대한 세밀한 기준을 세워야 독자나 출판계에 혼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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