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기자의 문학뜨락]한국문학 세계화하다 보면 노벨상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4일 03시 00분


고은 시인이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된 것은 2002년부터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해외번역 사업이 탄력을 받았고 작가가 낭독회와 강연회 등 해외 행사에 활발하게 참여한 것도 관심을 모았다. 승려 출신인 시인의 불교적 시세계도 서구 사회에선 화제였다. 노벨 문학상이 작가의 정치적 이력도 감안한다는 점에서 민주화 투쟁을 한 작가의 삶도 충분조건이 됐다.

올해도 고은 시인은 수상 후보로 거론됐다. 외신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됐음은 물론이고 8일 노벨 문학상이 발표되기 직전 고은 시인은 영국의 베팅업체 래드브룩스가 꼽은 후보들 중 공동 7위에 올라 있었다. 상위권 작가들 중에는 고은 시인보다 훨씬 더 일찍부터 언급된 이들이 많다. 미국의 필립 로스와 조이스 캐롤 오츠, 알바니아의 이스마일 카다레, 오스트리아의 페터 한트케 등이 그렇다.

고은 시인의 작품은 19개 언어권에서 88종의 저서가 번역돼 있다. ‘만인보’, ‘화엄경’ 등을 비롯해 16종이 영어로 출간됐고 프랑스어, 독일어 등 유럽 각국의 언어로도 소개됐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경우 보통 20∼30개 이상 언어권에서 작품이 소개된다.

노벨 문학상의 주요 요건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은 스웨덴어 번역본이다. 노벨 문학상을 심사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심사위원이 모두 스웨덴 사람이어서다. 최근 10년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이 수상 전 스웨덴어 번역본을 낸 저서 수는 평균 6, 7권 정도다. 고은 시인의 경우 스웨덴어로 4종의 도서가 출간됐고 현재 시집 1권을 더 번역하고 있다.

스웨덴에선 아틀란티스, FIB, 포럼 등의 출판사에서 나온 작가의 수상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졌는데, 고은 시인의 스웨덴어 번역본 중 3권이 아틀란티스에서 출간됐다.

고은 시인의 작품이 해외에 소개된 현황으로 볼 때 최근 수상자들의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충분하다고 하기도 어렵다. 스웨덴어 번역은 안데르스 칼손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 한국학과 교수와 그의 아내인 박옥경 씨의 작업에 의존해 왔다. 번역자를 늘리기 위해 번역원은 스웨덴 스톡홀름대 교수진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문학 번역 실습 워크숍’을 하고 있는데 아직은 초기 단계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고은 시인의 수상 가능성은 계속 높고, 다른 한국 작가도 얼마든지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한다. 풀을 넓힐 수 있고, 넓혀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해외에서 얻는 반응은 주목할 만하다.

올 초 한강 씨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영국 가디언에서 “영어로 소개된 한국 현대문학 가운데 가장 특별한 경험”이라는 평을,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프랑스 르몽드에서 “강하고 위대한 문학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김애란 씨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는 지난해 프랑스의 언론과 문단이 미처 관심 갖지 못했던 ‘숨겨진 걸작’에 준다는 ‘주목받지 못한 작품상’을 수상했다.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상무는 “‘한국문학이 해외에 이름을 알린다는 것이 1990년대 초만 해도 낭만적 구호였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근거리에 와 있다”고 말한다. ‘고은’이라는 이름이 오랫동안 논의돼 온 터라 노벨상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더러 있겠지만, 노벨상 너머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마땅한 과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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