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애절함 가득한 다양한 사연 가슴 뭉클 우연히 발견한 행운의 보석같은 연극
낯선 거리, 우연히 문을 열고 들어간 작은 식당에서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맛있는 요리를 맛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소소한 행운이 겹치다 보면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한 곳’이란 안도감에 젖게 된다. 연극 ‘돌아온다’는 별 생각없이 공연장을 찾았다가 행운을 주운 작품이다. 처음엔 몰랐는데 쓱쓱 소매로 닦고 보니 보석이었던 것이다. 10월25일까지 서울 대학로 엘림홀에서 공연한다.
경기도 외곽 시골마을. 수 년 전 마을에 불미한 일이 생겨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가뜩이나 조용했던 마을엔 휭휭 겨울바람만 분다. 이런 마을에 작은 식당이 하나 있다. 허름하고 낡았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너덧 개의 테이블이 있다. 꼼장어와 돼지고기를 구워 파는 술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싸구려 원탁이다. 이 식당이 다른 식당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식당 벽 위에 걸린 손 글씨 액자일 것이다. 액자에는 이런 문구가 휘갈겨져 있다.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 그래서 이 식당의 이름은 ‘돌아온다’ 식당이다.
자리에 앉으면 메뉴판보다 막걸리 한 통과 술잔이 먼저 놓이는 곳.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눈치 안 보고 막걸리를 몇 병이고 마실 수 있는 곳. 옆을 보아도 건너편을 보아도 소주, 맥주, 양주가 아닌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뿐이다. 돌아온다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신 뒤 진짜로 그리운 사람을 만난 미담사례들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이 먼 곳까지 막걸리를 마시러 온다.
실종된 아버지에 대한 깊은 상흔을 지닌 남자(윤상호 분)가 돌아온다 식당의 주인이다. 이 집에서 가장 자주, 많은 막걸리를 마시는 남자이기도 하다. 주인이 식당 문 닫아놓고 볼 일 보고 왔다고 욕지거리를 해대는 욕쟁이 할머니(김곽경희 분),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재일교포 여교사 고유정(강유미 분), 집 나간 필리핀 아내 제니를 기다리며 매일 막걸리를 마시는 청년 김충기(신진철 분), 새로 부임한 주지스님(리우진 분), 노교수(이황의 분) 등 손님들의 사연이 분분하다. 돌아온다 식당에 깃들어 있는 부부 영혼의 사연이 시큰하다. 남편(한일규 분)을 찾아 떠도는 부인 역 정연심의 애절한 부르짖음이 관객의 마음에 손톱을 들이댄다.
극단 필통의 열 번째 신작이다. 필통의 대표를 역임하고 현재 (재)강원도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인 선욱현이 대본을 썼고 극발전소301 정범철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돌아온다’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돌아온다, 돌아온다. 돌아올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제각기의 방식’으로 그리운 사람들을 만난다. 그 ‘돌아옴’은 헤어짐만큼이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어쩌면 이 연극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돌아온다. 언젠가는, 어떻게든 돌아온다. 기다리는 사람이 돌아오든지, 아니면 기다리고 있는 내가 제 자리로 돌아오든지. ‘돌아온다’가 해외 무대에서 공연되는 날이 온다면, 영어제목을 ‘Come Back’이 아닌 ‘Hope(희망)’라고 달고 싶다.